나의 이야기

미래에 대한 담보..

두부장수종치네 2012. 1. 16. 19:43

 

 

월요일 첫날 부터 카톡의 문자 하나로 마음 상해 시작을 했더니 상한 마음으로 하루가 끝나는 것 같다.,
역시 사람은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 가짐이 그날 컨디션을 좌우하는게 아닌가싶다.
아주 오랜만에, 자주 찾지않던 후배 여자한테 연락이 왔길래 야속하게 거절하기 뭐해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되었는데, 느끼는 것은 역시 나이를 먹으면 아집이 강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 아집의 주인공은 여자 후배가 아니라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얘기끝에 어찌하다가 보험에 대해서 얘길하게 됐는데...
난 보험같은 걸 들지 않는다고 하자...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것이 였다. 
노년에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과정에서의 고통에 대한 대비라는
그녀의 말이 틀린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보험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거의 바닥에 가깝다.


물론 내가 매달 보험료 명목으로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어렵거니와 한동안 앓고있는 고혈압으로
보험을 들때마다 건강진단이니 뭐니해서 아주 복잡한 절차를 거치다보니 그 부분에대한 거부감이랄까?
어쩌면 보험이란 것에 애초부터 불신을 갖고 있어서 더 그럴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홈쇼핑을 보다가 치과보험 광고가 나오길레 그래 치아보험 하나정도는 들어놔야
노년에 편해지겠다 싶어  연락처를 남기고 보험회사로부터 아주 형식적인 절차를 걸쳐 보험에
가입을 했으나 가입 서류를 받고 정말 화가 난적이 있었다. 결국 해약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지만...


임플란트 한개를 해 넣으려면 몇백만원이 들어가는데 가입 일년간 임플란트를 할 수 없는 조항부터
일년후 임플란트를 하는데 보험회사에서 주는 비용은 치아 한개당 20만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치과치료에 대한 실비를 청구하려면 일단 과거 5년간 치과에 가지않았어야 하는 법규도 있다.
이런 뎅장할... 아니 치아가 부실해서든지 아니면 잠깐의 치료라도 하기위해 5년전 치과 진료까지
기억을 해내야하고 엄청 어려운 치과보험 하나를 들었다 싶었다.


혹시해서 조목조목 비용을 따져 봤더니 애들 껌값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 웃기는 짜장면 같은
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이 딱 그말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러다보니 보험에대한 신뢰가 아직은 내게 있어서 바닥이다.


또 하나 문제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뻑하면 제멋대로 바뀌는 무슨무슨 정책 (보험의 보상정책을 포함해서)을
보고 들으면서 전반적으로 보험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에 덧붙여 어떤식의 죽음이건 죽음 그 자체가 엿같은 것이여서
어떤식의 죽음이 덜 엿같다고 보지 않는... 그럼으로 죽음에 대비한다던가 하는 것 따위가
큰 위안이나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다는 내 희얀한 생각도 보험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후배여자가 아주 독하게 내게 따지듯 질문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깔끔하게 죽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아프고 병원비는 나오고...
더구나 누구하나 지켜줄 사람도 없으면서.. 그럼 어쩔거냐는 질문이다...


맞는말이다. 노년을 생각하면 이런 저런 생각이 오락가락 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나의 아집이 아닌가 싶다. 생각과는 조금은 다르게 말을 내뱉는 것,
내 생각이 정답이고 나만이 멋진놈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에서 일까?


난 그냥 그건 그때가서 고민하고 싶고,
단지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싶고 (솔직히 오늘이 곧 미래 아닌가.),
혹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건 고스란히 내가 겪어야할 몫이 아니겠는가 라고 했다.

 
시름시름 앓고 병원비도 못내고 길바닥으로 쫒겨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일순 든다. 생각해보면 깔끔한 병원의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과 이리딩굴 저리딩굴 길바닥에서 딩굴다 죽는것에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종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행여 그 둘 사이에 사소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를 위해서 지금 현재를
졸라게 투자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가치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열라게 열변을 토하다보니
참 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바로 이런것들이 사람과 만남을 파괴하는 중요한 인자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하루 우울하다는것은 바로 내가 간과하고 있는 그 아집때문에 우울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문득 얼마전 지하철에서 봤던 껌팔던 노파가 떠오른다.
그리고 비좁을 만원철에서 마구잡이로 사람들 틈을 헤집고 신문지를 모으는 노인도 떠오른다.
그런 남루하고 노쇄한 분들을 볼때마다 왠지 씁쓸하고도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환경에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나의 그 씁쓸하고도 서글픈 생각은 어찌보면 학습된 것의
산물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오만 같기도 하다. (얼마전에 몇십억 재산을 소유한 노숙자가
몇천만원이 든 가방을 끼고 노숙생활을 하는 기사를 본 기억도 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어쩌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는(예를들어 정신줄 놓은 사람) 또는 인식하더라도
그 인식의 시간이 대단히 짧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이 보기에는 측은하고 안되보이더라도 그 자신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사람은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경우 그런 사람들에 대한 타인들의 걱정과 염려란 그 타인이 스스로 정한 관념의
테두리에서 파생된 괜한 노파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근데 만약... 사람이 정말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그리 행복해 보일 것 같지 않은 것도 같고...
인식의 범위라는것..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그러나 닥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의
두려움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정해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로 쓰고 있자니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대체 뭔소릴하는 건지 모르겠다. -.-;;;;
결국 그 후배여자와의 이런저런 토킹어바웃은 결론없이 어색한 침묵으로 유야무야 끝이나고 말았다.
돌아오는길에 이런 내 생각이 대한민국의 다른 많은 보편적 사람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잠시 내가 보험이란 것에 대해 약간 이상한(?) 생각의
소유자인것처럼 느껴졌다.

 
아, 뎅장... 뭔 소린지.. 수습이 안되는 말만 계속해서 지껄이고있다.
그만... 하루가 우울하면 별별 생각으로 나를 학대하는 것 같아 정말 더럽다.
나를 리플레쉬하지 못하는 것은 성격탓일게다.. 무엇이든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 더러운 성격..


마지막으로 블러그 친구들에게  질문할께 하나있다,.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그러나 닥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의 두려움에 대한
인식과 대비가 과연 각 개인에게 얼만큼의 행복, 아니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때가서 대처하고 걱정하는게 더 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