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
삶이 나를 속이는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함께 했었던 사람과 좋게 헤어지며 서로의 밝은 앞날을 기원해주더라도
뒤돌아 생각해보면 후회도 많고 홀로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할 일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럴 때마다, 삶이 그대를 속였네 어쨌네 하면서 핑계대지 말고
쌀쌀한 날씨에 맨살을 내놓은듯이 한기가 느껴지더라도
맨살의 감정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부딪혀가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그제서야 삶이 나를 속이건, 내가 나를 속이건 간에 관계없이
조금더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창밖은 이미 어둠이 내렸다.
언젠가 어떤 여인에게 썼던 편지의 일부중에 한 글이 생각난다,
삶을 버티게 하는 두개의 기둥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희망"이다라고..


오늘은 하루종일 컨디션 저하와 바이오 리듬이 엉망이였다.
피지컬, 이모션 등등.. 날씨가 주는 병폐이다.
나는 하늘이 내려앉는 구질한 날씨에 아주 알레르기같은 반응을 보인다.
무언가 타는 목마름이 나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다.


내 자신도 그 갈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조울증 환자처럼 나를 자꾸 학대하는 걸 보면 분명 문제이다.
무엇때문인지 마음을 뚜렸이 집어낼 수 없는 것이여서
결핍된 내면의 세계와 주변의 사물들이 혼재되어 내 시야를 어지럽힌다.

 

오늘 하루는 어느 누구도 내 곁에 와서 대화를 요청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직원들은 이러한 내 모습을 너무도 잘안다.

점심조차 같이 먹으러 가자는 소리도 안한다. 무언가 골똘하고 심각하면

사무실 전체가 너무도 조용해진다. 이러면 안돼는데.. 미안하다 직원들에게..


아니나 다를까 그 병이 극에 달했을때 괜한 봉변을 당한 미디어랩 사 직원.
서류 하나가 잘못되어 내게 자문을 구하고 서류 재 발급 요청을 했다가
일의 꼼꼼함을 물어 된통 내게 꾸지람을 듣고 얼굴 벌개어 자기네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결국  서류는 광고주에 들려 자초지조을 설명하고 재발급을 받아 전해주었지만
내내 그 친구의 벌개진 얼굴에 당황스러워했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내일쯤 전화를 걸어 점심이라도 같이하며 기분을 풀어주어야 할 듯 싶다.


갈등과 삶의 매듭은 얽고 풀리라고 있는 것이니 시간이 해답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은 원칙을 준수하며 사는 내게
진리는 분명 아니라는 생각과 꾸며진 세계의 허상에서만 존재할 뿐이라 생각한다.


삶이 나를 속이면 속지 않도록 노력하고 슬퍼할만큼 슬퍼하고 노할 만큼 노해서
그 속아진 삶에 다시금 속지않는 허상을 없애도록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누가 내일이 오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겠나?
안네 프랭크 일기속 말처럼 나도 내일이 오는것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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