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득 잠이 오지 않아서 케이블을 틀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혹시 이 영화를 나와 같은 시간대 본 블러그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에 왜 잠을 안자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야행성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한때 나는 왕가위 매니아 였던 적이 있었다.
해피 투게더를 포함한 거의 전 영화를 몇 번이고 보곤 했었다.
그때마다 영화 후기라는걸 쓰기도하고 나름 자랑스럽게 이곳저곳에서 영화 감상평을

보고 장단점을 파악한 후 자랑스럽게 평론아닌 평론을 한 기억도있다.


후후~~ 지금 생각하며 참으로 조악한 삶을 살았던게 분명하다..

내 블러그 친구이신 쭈니님처럼 완전 영화 관련된 블러그를 만들 재주도 없으면서
지식을 난무하게 자랑하고팠던 젊은 시절의 다큐멘타리가 이제와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왕가위가 영감을 얻었던 소설, 음악, 영화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그의 작품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실로 몇 년만인지 기억도 없지만 우연하게

잠못드는 밤에 나는 왕가위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영화가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당부분 지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처음부분 부터 본거 같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게 된 왕가위의 작품은 처음에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듯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에 단골로 나오는 여러 주인공들은 친근감으로 다가왔고 곧 익숙해졌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4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왕가위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나에게 그의 영화는
지난 나의 기억의 회고와 같다. 물론 나와 화면속의 주인공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당연히 그가 스쳐갔던 사람이나 사랑, 상처 등은 나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3가지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는 여러 모습들, 예컨데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없을 거 같은 공허한 맘을 가지고 다른 이성과 보내는 강렬한 여러 시간들이나
누군가 어려운 사랑을 순수하게 지켜보고 이를 도와주면서 느끼는 애틋한 마음,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다른 이성과의 짧은 만남 같은 것들은
누구나 직접 경험해 보았거나 하다못해 한번쯤은 맘속에서라도 품어봄직한 일들일 것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화양연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시에 기존 왕가위 영화들을 토대로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화양연화의 주인공이었던 양조위가 남자주인공 차우로 나오고 있으며 아비정전에서부터
왕가위 영화들의 여주인공의 이름으로 쓰이는 수리첸(수리진)이 어떤 식으로든 등장한다.


그러나 계속하여 수리첸의 역할을 맡아왔던 장만옥은 왕가위와의 불화로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신 공리가 동명이인의 수리첸으로 등장한다. 동시에 중경삼림의 여주인공이었던 왕비-왕정문이
기무라 다쿠야와 함께 두 번째 사랑얘기와 차우가 쓰는 소설 2047의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즉 왕가위 영화의 주인공들이었던 양조위, 왕정문, 유가령, 장첸이 출연하는 가운데 새롭게
장쯔이, 공리, 기무라 다쿠야 등이 등장하여 새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 셈 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의미가 각자에게 다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지난날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긴 터널을 지난 온 거 같았다.


왕가위의 영화가 항상 어둡고 암울해 보이는 것은 우울의 극단에서 보이는

조그마한 희망의 여명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을 지나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왕가위의 세계가 미지의 미래공간으로까지
발전한다면 나의 세계는 세상의 끝에서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을 지나 그녀를

대체하고자 발버둥 쳤던 순간적인 쾌락의 순간을 건너서 마침내 새롭게 희망을 보고자 했던

화양연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에 이른다.


나에게 화양연화의 순간은 언제였던가? 를 생각해본다.
블러그 친구들은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라?
오랜시간이 흘러갔지만 너무나 짧았기에 아름다웠던 그런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그날의 강렬했던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웠던 누군가의 모습과 더 이상 뛰지 않기에 멈춘 줄 알았던
나의 가슴이 뛰던 그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영화 속 소설 2047에서 일본인 남자 탁 (기무라 다쿠야)이
떠날 것을 부탁했던 안드로이드처럼 그 사람의 맘속에도 도저히 빼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결론적으로 왕가위의 영화들은 언제나 극단의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선택의 몫은 각자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소한 화려한 캐스팅만큼은 안티팬들의

볼멘 목소리를 어느 정도는 잠재울 수 있을 거 같다.


동시에 그의 안티가 아니라면...
4개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가 치유의 시간을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자기 자신의 맘속에도 강렬한 무언가가 있기에 항상 맘속에 다른 그 무엇이 있는

상대를 사랑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갈망하는 사람을 받아들 일수 없는 주인공을

설정해놓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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