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말이 되면 난 할 말이 없어진다, 쓸 말은 더더구나 없어진다,
그저 잘못 살아왔다는 말밖에 또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내 입장에서 보면 꼭 년 말이라 할 말이 없는 게 아니고 일년 내내 할 말이 없다 보니
이때쯤 되면 남들보다 더 허허롭고 쓸쓸하고 후회롭고 기막히는 입장이 된다,
그래서 할말이 없을 때는 젊고 희망찬 생각으로 나를 변명하고 구실을 찾아낸다,
나 아닌 상대를, 나 아닌 그 무엇을 원망하면서…… 인생이란 두 글자에 쫄아든다.
오늘 같은 날, 엄청나게 추운 날씨를 즐겁게 극복하려면 시선의 방향을 맥락에 따라
분리하여 인식을 할 수만 있다면 자아를 인식함에 있어 혼자보다 둘이면 어떻겠냐는
공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꼭 남녀의 상열지사를 연상시키는 남녀 둘의 이야기에 국한하고자 함이 아니다.
말하자면 "36.5도의 적당함 보다는 73도의 아찔한 온기를" 이란 타이틀을 내 걸어본다면
마음이 추운 이들에게는 다가오는 성탄절이 고마움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은 벌레 먹어 썩은 자리, 젊은 날에 남발했던 맹세들이나 약속들이 무너진 채
바람처럼 울고 가며 부르는 이름이라고 이야기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떨어져 내린
가랑잎 되어 년 말의 인생으로 나뒹굴곤 한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이렇게 추운 날이면 구세군 냄비와 함께 명동거리가 생각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헤 메였던 젊었던시절……
가을엔 하루키의 질풍노도 시절, 그의 연애 사를 아련하게 느끼게 해주는 소설,
그 소설속 와타나베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하는 상실의 시대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와세다 대학 연극 박물관 앞, 노랑 은행나무가 연상되면서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를
오고 가며 두여자를 사랑을 하던 와타나베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을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나오코가 죽자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온 세상에 원하는 건 너밖에 없다고 외친다.
한참이나 침묵이 흐른 뒤, 미도리가 묻는다. "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요? "
그러나 와타나베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미도리의 이름만 반복해서 부를 뿐이다..
가을이 되면 나도 " 외로워, 슬퍼, 우울해 " 하며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가 미도리처럼 " 당신 지금 어디야? " 하길 은근히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가 내게 이렇게 얘기할 지 모르겠다. " 이봐요.. 지금 생리해요" 허걱~~
하지만 겨울이오면 나는 또 다른 장면을 떠올린다.
여배우 이미숙이 나왔던 겨울나그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SBS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나와 그녀의 날카로운 콧등을 이야기 하던데
나는 그 당시 착한 눈매가 주는 우수에 젖은 눈이 잊혀지지 않아 한동안 가슴앓이 한적이 있다.
슈베르트의 연가 곡 겨울나그네를 즐겨 듣게 된 것도 그녀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사랑에 지친 겨울나그네는 성문 앞 우물 곁 보리수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랜 후,
얼어붙은 냇가에 다다른다. 이때 부르는 연가 곡 6번 "홍수"와 7번 " 냇가에서"를
듣다 보면 정말로 가슴이 울컥해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내 눈물이 이 눈을 녹이고,
그 녹은 물이 냇물을 따라 흘러가면 그녀 집 앞에까지 가겠지"
이 부분의 노래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해석이 독보적으로 정석인 듯싶다.
마티아스 괴르네에게 사사받은 피셔디스카우 음성은 왠지 눈물이 마를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너무 피셔디스카우를 폄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이미숙, 그녀는 숨겨놓았던 청순 미를 극대화시키며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첼로를 들고 가다 강석우와 부딪친 그 캠퍼스의 언덕길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강석우가 바래다주고 돌아서던 그 언덕 위의 하얀 집과 담장 위의 목련 꽃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을 한다,
겨울나그네와 슈베르트..
슬픔과 좌절을 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슈베르트의 실제 외모는 그야말로
으악~~ 하는 수준이었고 키는 불과 150센티 단신, 설상가상 배에 타이어를 두 개씩이나
두른 비만에 머리가 큰 수다스런 사내였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딱 나를 이야기해주는 듯 해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지독한 근시에 곱슬머리까지.. 눼미.. 전생에 내가 슈베르트였나?
낯선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방구석에 박혀 나오지 않았던 아주 수줍음 많았던 사내..
슈베르트는 밤만 되면 그 절망을 어쩌지 못해 사창가를 헤맨다.
슈베르트 가곡의 그 아름다운 멜로디, 가슴 저미는 그 순결한 사랑의 시와 사창가의
새벽에 남아 있는 욕정과 절망의 그림자는 모두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게 현실이고 그게 다였던 슈베르트.. 서울의 겨울거리는 내게 있어서 슈베르트의
고독처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기억은 항상 선택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실제 내 삶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내게 유리한 것들로만 구성되는 기억의 게슈탈트가 아닌가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할 말이 없다, 가슴에 담아 볼 기억뿐, 입안에 담을 기억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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