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박두진의 [묘지송](墓地頌, 1939)에서


지난 금요일 비보를 전해 들었다.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는 나의 귓바퀴는 멍해져 안개가 낀다.
별리와 상실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끄트머리는 죽음이다.


오늘 독침 같은 찬 기운을 둘러맨 비가 쏟아지는 날
영결식을 가졌다. 천수를 다하지 못한 작은 인생 하나
깊은 한숨과 눈물 속에 숨어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지난 수십 년간 우정을 지녔던 친구의 죽음..
내 삶의 추억 속 정겨움 안에 늘 그 친구가 존재하고 버티고 있는데
정겨움이 한 번 비틀리고 틈새가 벌어지니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정겨움은 지독한 고통을 안겨줄 독(毒)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친구의 죽음을 통해 느낀다. 어쩌면 별리(別離) 또는 상실(喪失)일지도 모른다.
증오와 질투는 삭혀질 수 있지만, 별리와 상실은 치유되지 않는 상처임에 분명하다.


결국 삶이란, 편안히 누울 한 자리를 얻는 것일까?
박두진 시인의 묘지 송의 무덤은 왠지 밝기만 하다.


살아서 설던 주검’ 죽어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였으니,
어찌 환한 삶이 아니랴마는...
이리저리 부대끼며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서야
한 뼘만큼의 편안함을 얻는 것이라면,
편안한 공간을 살아서는 지닐 수 없는 것일까?


이제부터 11월의 가을은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시작이 될 것 같다,
기다림에 더께가 앉으면 그리움이 되어 가슴 한가운데를 커다랗게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질기기 이를 데 없어,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물러서질 않을 것이기에
친구의 죽음 앞에 친구를 향한 나의 그리움을 전할 작은 우편함 하나를 갖게 될 것이다.


기다림 또한 출렁이는 물결이요, 일렁이는 바람결이 되어.
새 소리가 유난히 맑은 가을날이면 왠지 그 친구와의 추억이 생각나
아픔의 상흔을 어떻게 붙잡을지 벌써부터 가슴이 저며온다.
하늘 나라 그 어딘가에서 잘살기를 바라며 친구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본다.


갑자기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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