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처음 듣는 뉴스는 어제와 다를 바 없다.
바뀌고 바뀌지만 결국 그것이 그것인 제도와 정책들. ‘창의’와 ‘혁신’ 운운하지만,
정작 강변하는 이들은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희망’이 없고 ‘내일’이 없다. “한 발 재껴 디딜 곳조차 없다.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부팅(booting)을 한다.
아직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30분 전이다.
차(茶) 한 잔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쫓기듯 부팅하고 곧바로 화면 가득 글 뭉치를 띄어놓고는 마우스를 움직이고
자판을 두드리며 모니터로 잠수한다. 이따금 알맹이 없는 말하기와 건성 듣기를 하면서.
이런 자세는 아주 나쁜 거라고 언젠가 TV에서 경고한 적이 있다.
터틀넥(turtle neck)이라 했던가. 책상 앞에서 척추가 조금씩 휘어지고 있다.


근육이 뭉치고 혈압도 이따금씩 오르며 스트레스 또한 진하게 받는다.
문득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그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그립다.
그러다가 그가 세계적인 걸작을 남긴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진다.


언어는 존재하지만, 진실한 말 또는 대화들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말은 쉽게 하지만 듣는 일은 잘 못한다. 말을 들어주길 갈망하는 사람도
진지하게 그리고 끝까지 들어주질 못한다. 게다가 편견과 독선이 의식을 지배하면,
사실에 대한 냉철한 관찰이나 인식은 불가능해진다.


진지하게 사실을 대하려는 노력보다는 피상적인 관찰에 집착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그리고는 그것에 대하여 반대편에 있는 어떠한 논리나 행위도 용납하질 않고 거짓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건 어느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구를 할 때...
나처럼 신장이 작은 사람이 택하는 방법은 두 개 정도가 있을 듯 하다.


우선은 신장의 열세를 받아들이고, 다른 장점들을  극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슬램덩크에서의 송태섭이 대표적인 예로서,
스스로 밝히듯 '키작은 선수가 뛰어나지는 방법은 드리블 밖에 없다'는 식의 자세를 갖는 방법이다.
 

두번째 방법은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이다.
즉, 탄력과 점프력을 키우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서 신장의 차이를
극복해나가려는 것이다. 또다시 슬램덩크의 예를 들자면 전호장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사람들은 흔히 고집이 세고 남에게 지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성격이 많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세가 올바른, 혹은 더 뛰어난 자세일까?
나는 지금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가진 단점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쉽게 극복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스스로 체념하고서 다른 장점을 부각시켜야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단점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자세를 취할 것인가?


보통의 경우 나는 전자를 택했던 것 같다.
단순하고 명쾌한 반면, 포기가 빠르고 우유부단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냥 포기하고 아무것도 해보지 않는 자세는 지양해야겠지만,
여전히 어느쪽이 옳았던가 하는 고민은 계속된다. 참...어렵다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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