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어김없이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을 끄는 이름모를 꽃들.
우리는 그 식물들에게 값을 매기거나 관심을 가지고 돌보지않지만 어김없이
우리에게 마음으로 다가오는것은 우리네의 삶과 야생초의 삶이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야생초편지를 읽으며 이 사람은 정말 마음이 순수하고 정갈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편지엔 그 야생초가 갖는 의미를 수사없이 전달을 해 줘 읽는이로 하여금 마음 훈훈함을
느낄수 있었던거 같다,
‘토종이 사라진 사회, 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
위의 글은 황대권님이 쓴 “야생초 편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글이지만 야생초 편지를 읽으면서 그 분위기의 느낌에
공감하며 읽었을 때 받는 감정은 여간 다른 느낌이 아니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우리 인간만이 생존 경쟁을 넘어서서 남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빠져
자연의 향기를 잃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만이 옳고 잘났다고 뻐기는
인간들은 크고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 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새삼스러운 말이라 할 것도 없다.
본연의 형질로 변함없이 제 모습으로만 피는 야생초는 언제나 우리의 산야에
예전의 모습으로 피고 진다. 나는 우리 야생초와 야생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야생초를 좋아 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이 고향인 나로서는
어릴적부터 시골에 대한 동경이랄까? 갖지못한 추억같은걸 은연중에 샘냈던터이다.
그래서 야생초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해서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님 마냥 전문적인 기술을 얘기 할 만큼은 아니고
길 가다가 보는 야생초 하나에 관심을 둘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꽃들은 패랭이, 민들레, 씀바귀, 할미꽃, 제비꽃, 인동초, 구절초, 개망초, 나팔꽃 정도이다
나는 우리 야생초, 야생화만큼 한국적인 인상을 주는 꽃을 달리 알지 못한다.
특히 담담한 가운데 수더분한 노련미가 보이는 지순한 할미꽃을 무척 좋아한다.
할미꽃, 그 할미꽃이 보여주는 말할 수 없이 인정스럽고 따뜻한 할머니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좋다. 할미꽃 이름도 얼마나 좋은가?
올해도 야생초들이 피운 꽃들로 향 가득하여 새와 벌과 나비가 다시 찾아와
일상에 찌든 나에게 싱그러운 평화와 뿌듯한 풍요를 줄 것같다.
왠지 이봄에 나드리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드는 건 무얼까?
밖의 날씨가 너무도 화창하다. 그동안 보지못했던 사람들에게 소식이라도 전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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