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어요.
따가운 햇살의 커튼을 밀어 올리며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좁다란 하늘의 가슴을 차츰차츰 넓히며 가을이 온 것을 느끼게 됩니다.


3일 연속의 8월의 마지막 연휴가 시작되면서 홀로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어디를 갈까를 고민하지 않았어요. 혼자였던 관계로 떠나면 바로 그곳이
여행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떠나기 전의 흥분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생각하고 떠나려는 사람의 표정이 마치 아픔을 겪는 사람의 표정이라니
무표정에 나는 당황하고, 그 무표정이 또 다른 표정임을 인식하려 깊은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표정이 표정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바로 그 표정 속의 의미는 생활이라는 표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 전 낙향한 후배한테 가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정말 보물섬을 향해 가는 탐험가의 마음처럼 설렘이 왔습니다.
일초의 망설임도 필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임실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이게 고속도로인가 할 정도로 완전 주차장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연휴를 즐기려는 피서객들의 탈출방법이겠지요.
모든 게 정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흐름은 있었나 봅니다.
평소 시간보다 두 배나 더 걸렸지만 단절로부터 맥박 뛰는 파문을 받게 합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조우...
한 평생 삶의 도처에서 그들과 마주치고 부대끼고 스치고 손잡을 수 있음은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아 헤어지면서 다시는 못 만날 것처럼 생각이 들었지만
며칠 전 본 사람들처럼 스스럼없이 대화가 시작되고 음식을 나누고 백 년도 살지 못할 것이지만
만날 때 마다 설렘이 드는 사람들..


진정으로 후생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세월의 흔적이 이끼처럼 끼기 시작한 오랜 만남의 흔적들이 우리들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염려와 격려, 그리고 또 다른 표정을 안도감 있게 배려하는 손길,
잠시 잠깐 머물다 올라온 하루였지만 버려두고 갈만 한 것이 없는 만남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날 듣고 싶은 교향곡 하나가 있다면 부르크너 교향곡 8번입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최고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브루크너 교향곡의 최고는 8번을 선정 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9번이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개인의 선곡방법으로는 브루크너 8번은 최대의 작품이고 최고는 9번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유는 바로 9번 교향곡의 아다지오이기 때문입니다..
혹 나중에 제가 브루크너 9번을 뮤직에세이로 쓴다면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교향곡의 완성도 면에서도 사실 매니아 층은 환장을 할 만큼 좋아하는 걸 보면
8번이 주는 위상은 대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8번은 두 번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초고 판과 수정 판의 미묘한 차이…


제가 아직은 브루크너를 평가할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음악적 지식을 전문가처럼 가지고 있지
않는 터라 깊이 있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차이는 1악장의 피날레 입니다.
초고는 fff로 끝나는 반면에 수정판 이하는 ppp로 끝을 냅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알겠는데
더 미묘한 차이는 솔직히 모르겠네요.. 공부를 더하고 나중에 말씀을 드리죠. 쩝~~


그리고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 관현악의 편성 규모가 커지는 것도 8번 교향곡부터입니다.
7번 교향곡 까지는 2관 편성 이였는데 8번부터는 3관으로 편성이 바뀐다는 것..
이것도 특이한 편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2악장의 스케르초의 시작되는데 배치만 보아도 브루크너가 베토벤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 입니다. 스케르초를 과감하게 2악장으로 배치한 이유는 7번의 성공으로
브루크너 자신이 작곡가로서 위치가 생겨서 베토벤을 모방했다는 비판에 브루크너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3악장을 8번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거대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다지오임에 틀림없습니다.
하프의 로맨틱한 선율 속에서 천상의 세계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지휘자들 역시 3악장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4악장이 좋습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떠나 마지막 피날레의 금관의
최강주를 듣고 나면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의 대표주자는 바로 베토벤 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향곡 8번의 모델은 베토벤 9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1악장의 어둠 2악장의 투쟁적인 스케르초, 3악장의 숭고한 아다지오, 4악장의 환희에 찬
피날레 역시 평생을 베토벤을 이상으로 삼았던 브루크너 입니다.


개인적으로 수없이 많은 연주자의 손길을 통해 음악을 들어왔지만 그 중에 한 명의
연주자를 뽑으라 하면 저는 주저 없이 첼리비다케를 뽑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를 무시 할 수는 없겠지만..브루크네리안을
자처하는 지휘자를 뽑으라면 바로 첼리비다케이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음표 하나에 내포된 고저의 굴절을 다스리는 연주자라고나 할까?
턱없이 긴 호흡, 지속음까지 안배하는 각 악기의 울림. 시시각각 변천하는 각 악기의
섹션간 밸런스. 덕분에 다른 연주자에게서 중첩되지 않는 성부들이 제 모습을 찾는다 고나 할까?


갑자기 내지르는 캬라안이나 인발 같은 연주자 보다는 음의 덩어리를 다잡아 유유히
몰고 가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처음 들으면 바로 매력을 느끼는 연주는 아니지만
들을수록 빠져드는 연주임에 분명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브루크너의 모습이지요,.


연휴의 두째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단 5분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이지만 또 다시 만날 해후를
생각한다면 가을의 한 가운데 서있어도 맥박뛰는 설레임으로 기대 넘치는 삶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Anton Bruckner - Symphony Number 8 in C minor
Version 1890 - Edition: Leopold Nowak
Münchner Philharmoniker conducted by Sergiu Celibidache
Live Suntory Hall Tokyo, 20 October 1990
1. Allegro moderato
2. Scherzo. Allegro moderato - Trio, langsam
3. Adagio. Feierlich langsam, doch nicht schleppend
4. Finale. Fierlich, nicht sch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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