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가 말한다.


"사람이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사랑조차)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아니, 내가 생각하기에 그보다 더한 것은 떠나보낸...이 아니라,
떠나간 사람이 그 이후로도 어떻게든 관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에 시시때때로 그 사람 시선을 의식해 일부러 그런 척,
또는 일부러 그렇지 않은 척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행동에 관여하는 어떤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눈금은 분명하면서도 믿음이 잘 안가는 저울처럼 느껴진다.


요즘 관심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사후에 인정받은 이들이다.
천재라는 신의 축복은 당대의 외면을 담보로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날이 춥기도하고 일정에 문제도 생기고 제대로 뭔가 풀리지를
않는 듯 하여 잠깐 클라이언트 사무실에 다녀오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본것 같다,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이 책은 두 노인이 만나 하룻밤 사이 대화하는 이야기가 거의 전부다.
그 대화 속에 두 사람 평생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증오가 깃들여 있다.


어느날 갑자기 정말 절친했던 친구가 찾아와,
잊었던 저 마음 깊은 곳에 감쳐놨던 운명같은 사랑..
그 열정을 다시금 되살리게 한다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전개 되지 않는다.


단지, 40년만에 찾아온 친구는 주인공의 마음속 깊이 꾸깃꾸깃 감쳐놨던
그 소중한 열정에 불을 짖피고 다시 고통스럽게 하는 작은 대화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에 힘을 실으려면 압축하고 제한하라고 했던가.
이 책에는 그네들의 일생이 단 하룻밤 사이로 압축되어 있고 그네들이
거쳐간 세계 역시 외딴 성의 골방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 그리고 나와 같지 않은 부류의 사람,
얼핏 너무 이분법적인 분류로 볼 수 있지만 나는 이 분류가 맞다고 본다.


통하는 사람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통하지 않는 사람과 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통하는 사람을 하나 더 찾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헨릭과 콘라드는, 또는 헨릭과 크리스티나는
너무나(!)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바로 거기에 비극이 있지 않았을까?


보통 괜찮은 책 한 권을 손에 넣으면
그 책 속에 곱씹어볼만한 문장이 몇 개씩 자리하기 마련이다.
따로 적어놓고 싶은, 또는 암기하고 싶은...


거짓말이 아니라 이 책에서는 그런 문장을 거의 매 장마다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얇은 책이지만 간단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고,
한 번 손에 쥐면 쉽사리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이 책의 제목인 열정, 또는 정열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열정이라는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은 아니라고.


그것은 인간이 악마로부터 빌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열정을 빌어 쓰고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막대한 채무로 인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면을 보이게 되는 거라고.


그럼에도 내 삶에는 열정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잘 쓰는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많은 숙제를 남겨준 소설이다.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 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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