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일렁이는 빛무리처럼 다가오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소중한 환상을 두 손으로 길어 담아 봅니다. 제 가슴속에...
때로 홀연히 나는 하나의 이름.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몸짓을 떠올리면서
환상의 묘비에 들린 듯 그 사람을  침묵속에 깊게 맞어 보곤 합니다. 


그 사람을 깊게 맞아할때면 불투명하고 안개 낀 환상의 산숲과 들판의 고요 속에
서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공기의 흐름, 바람의 흔들림, 나무의 몸짓,
햇빛의 떨림까지도 순수한 감동으로 다가서는 것 처럼 다 만지고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바삭바삭바사삭...
발걸음  소리가 뚝 끊어지면서 찾아드는 깊은 고요...
가슴 속에 커다란 침묵이 찾아들어 삶의 북풍이 불어올 때 나는 말없이 허무에로
한 발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인간 존재의 깊은 고독의 얼굴과 만나게 됩니다.
그 고독의 얼굴과 마주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기도 하구요.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남자의 정복적 욕망과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화해스러운 욕망의 얼굴을 하고 있노라니 나의 정신 틀은 견딜수없는 파열음을 내고

나를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어느것이 정답일까?
오직 정신적 영혼만을 갈구하는 사랑이 진정성있는 사랑일까?
그 자리에서 두손모아 무엇인가 존재의 해방을 위해 다가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건지
어느것이 진리이고 사람을 사로잡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신은 제가 터득하고자 하는 소망을 알아주시겠지요?
마치 깊은 영혼의 계곡에서 스며나오는 듯한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매혹이 끝나지않는

음악과 같이 깊은 여운을 남겨줍니다.

다가서면 스러지는 이슬 같아서 환상 속에서라도 그사람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늘 행복해하며는 심술궂은 운명의 손이 닿는 것 같아서 나는 어떤일에도
기쁘기 이전에 두려움이 앞서곤 합니다. 그래서 슬픔도 기쁨도 가슴속 깊은 곳에
침전 시켜 버리려 합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순수하게 마음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나의 여건이 주어지길 바랄뿐입니다.
언젠가는 내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거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사랑은 죽지 않는 것이라고.... 이 가을 깊어가는 서정속에 나를 맡겨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은행나무 잎들은 맑은채색의 무늬를 엮어내고 있었지만
길거리의 낙엽들이 반란을 일으키 듯 바람에 이리저리 혼란을 이루는 걸 봤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고 현기증이 나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가을이 주는 묘한 감성은 아마도 영원(신의차원)과 시간(인간차원)의 명합을
시도해보는 그런 계절이 아닌가 싶은데요. 내가 믿는 신께 간절히 사랑하는 해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 받는 계절이 아마도 가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음악가 한명이 바로 브람스 입니다..
그리고 짙은 커피향도 떠오르구요, 그래서 브람스는 가을.. 아니 만추의 남자가 아닌가 싶어요
이름없는 악사를 아버지로 둔 브람스,, 그는 요한 야코 브람스의 음악적 영향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음악 정규교육을 받지못한 무학의 음악가 입니다.


브람스의 음악적 텍스추어는 묵직한 중저음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람스 음악에 곳곳에 저현의 선율들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니였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뮤직에세이에 올릴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op68 입니다.
교향곡 1번에 전해지는 브람스의 유명한 말이 있지요

 " 등뒤에서 다가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 라는 말은 바로 베토벤이 아니였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말하자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앞세대의 거장 베토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1892년 죽었어도 그 영향은 19세기 내내 베를리오즈 바그너 브람스 등

수없이 많은 유명 작곡가들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향속에 음악적 성과를 나타내려했던 초기작품이니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주는
묘한 쾌감은 아마도 이런 것 에 있지않나 싶습니다.
브람스는 외형적 고전주의의 껍질을 깨고 낭만주의적 내용을 끄집어내어 자신의 광기를
온전히 접합시키는 교향곡이 바로 1번이기 때문입니다.


드러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어울림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브람스 1번을 듣고있노라면 베토벤의 브람스인지 바흐의 브람스인지 잘 모를 정도이고
어쩌면 바흐의 베토벤(교향곡 1번)이고 베토벤의 바흐(레퀴엠)이고, 둘다이고 그렇다 입니다.


다만, 교향곡 1번 4악장 중간부분에 새로운 주제가 나오면서 흡사 시간의 공간으로 아니면
공간이 시간으로 혼동 전화되는 듯한 착각을 주는 대목이 있는데 충분히 탐미적이고
안정감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워낙 많은 평론가들이 말들을 많이해대서..ㅋㅋ


특히 브람스 교향곡 1번과 푸르트뱅글러와 로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음반은 흥미롭습니다
제 뮤직에세이를 많이 읽었던 분들은 이 친구는 푸르트뱅글러만 좋아하나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로린마젤, 클렘펠러 캬랴안, 번스타인, 칼뵘, 너무 많은 지휘자들을
좋아하고 심취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곡을 해석하고 멋지게 연주를 했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것은
바로 푸르트뱅글러와 네덜란드가 자랑하고 싶은 유명한 오케스트라 콘서트허버우 오케스트라..

오늘날 이 오케스트라가 있게해준 푸르트뱅글러... 그후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리카르도 샤이,

현재는 라트비아 출신인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를 맞고 있을정도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정상급 오케스트라 하나쯤 갖는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입니다.

어쨋거나 브람스 심포니 1번 연주가 아주 훌륭해서 내게 결정적으로 대접을 받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것은 궁합이라고 하는 것인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르트뱅글러가  콘서트허바우와 함께하기 때문에 더 특색이 잇다는 것은 정통 후기 낭만파적인 울림이

브람스적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지요?
가장 브람스적인 연주- 그것을 모노토닉한 화려함과 인간적인 감동을 모두 갖춘 연주라고  말입니다.
아마 푸르트뱅글러의 특기인 음색을 만들어내는 여타의 마에스트로가 꿈꾸지 못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분명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브람스를 진짜처럼 표현하는 콘서트허바우 같이

파트너로서 동반을 했다는 것은 환상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오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남모르게 혼자서 상념을 방관하면서 하늘과태양과 별과 빛을 좇으며

호젓한 행복감에 젖어 들고 싶다면 브람스 교향곡 1번과 함께 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11월 중순.. 이제 겨울이 몰려와 가을을 쫒아내려 하는 만추에 브람스를 만나게 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런 음악을 듣게 채찍질해주신 블러그 친구 빛마루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아마도 이 세상의 미소가 아닌 것 같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발견하실 겁니다.

 

 

일단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와 Mariss Jansons 지휘로 함께하는 전악장을 들으시고 나서

푸르트뱅글러와 로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 곡을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Brahms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1. Un poco sostenuto -- Allegro
2. Andante sostenuto
3. Un poco allegretto e grazioso
4. Adagio - Piu andante -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 Piu allegro
Mariss Jansons , Conductor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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