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명한 광고 하나가 있다
카메라 광고로 기억이 되는데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시간관 혹은 역사관을 함축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또 하나의 책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무라까미 하루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실제로 하루키 소설속 다자키 스쿠루는 이름속에 색채가 없기도 하거니와
본인 스스로는 자신은 색채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대부분의 평범함의 미덕은 자신은 중성적인 색이거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예감은 틀리지않는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토니는 말그대로
색채가 없는 평범한 인간이고 그렇게 살아왔다.
다자키 스크루가 순례를 떠나기 전까지 그의 일상사와 다를바없는 평범한 토니,


사라가 스쿠루에게 순례를 떠나기를 종용하는 것 같이 토니 역시 40년이 지난후
베로니카라는 옛애인의 모친이 보내온 유산분배와 편지를 받기전까지의 모습과
그렇게 다를바 없는 것 같다.


이 두책의 기록이주는 메인 테마는 바로...
기억은 덮어 둘수는 있지만, 각 개인이 가지는 역사는 지울수 없다. 이다
다시말해 개인이 가지는 역사를 지운다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고
죽이는 것과 마찮가지라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 두책의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통찰하고 회고 하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라고 번역했지만
노르웨이 숲에서 보여주듯이 상실감을 가진 자아가 점점 자신을 성찰 혹은 회고 함으로
회복해 나가는 그 과정, 역시 마찮가지로 토니나 쓰쿠루 두 주인공은 자신의 성찰과 회고를
통해 모든것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소설속에서 보여준다.


성찰을 낳는 것은 아픔이지만 줄리언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소설은
부정과 자아의 상실를 통해 자신의 껍질을 깨는 성장소설과 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껍질을 만들어 숨어버리기 보다는 과감히 껍질을 깨고 번데기에서 나비로 성장해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는 지울수도 다시 만들어 낼수도 없는 나 자신을 죽이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으로 돌아가보면...

소설적 완성도와 비극적 테마..
비극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돌이킬 수 없는" 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가 주는 분위기는 참으로 쓰라리고도 아름다운 뭔가 그런게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시간, 역사, 기억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삶에 짜넣은 작품이 아닌가싶다.
스스로 "평균치 인생"이라고 칭하는 삶을 사는 화자 토니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젊은 날의 기억
대학 때 잠시 사귄 여자친구 베로니카가 헤어진 후 자신의 친한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으로부터
이야기는 파생되어 나간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토니는 상당히 기억력이 현실적인 것을 보게 되는데.
나 역시 토니와 별반 다를게 없는 것 같다.
어떤 것은 엉뚱하게 기억하고 어떤 것은 통째로 잊어버린다. 어떤것은 정말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잊혀지지않고 기억속에 머무는 것도 있다.
 

우리들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추억은 실제보다 조금 더 아름답고 밝기 마련이다.
그래서 죽을 것 같았던 아픔도 향수나 추억을 더듬어보면 이해될 수 있는
그리고 아프지만 그럭저럭 아름다웠다로 평가 내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늙은 토니가 자신의 기억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낸 1부를 이미 읽고
2부로 넘어온 기억과 다른 사실과 맞닿뜨린다.
그렇다보니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지 않을수 없었다.
나 역시 통째로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몇번이나 앞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개인의 삶이 이렇게도 모호하고 불분명한데 우리가 배우고 사실이라고
"믿고있는" 역사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 진실이라는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는, 아니 어쩌면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한
"자기보존본능"에 의해 직조된 나만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왜곡된 내 말 한마디
혹은 행동의 돌덩이가 타인에게 미치는 파문을 나는 어떻게 조정하고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역사라는 거시적인 흐름과 개인이라는 미시적인 조각을 모두 아우르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짧지만 깊은 소설이었다고 자평한다.

 

 

소설 속에 이런 내용이 있는데 놓치기 너무 아깝다.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다양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 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홍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거의 명언의 반열에 오를만한 표현도 있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