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서와 교양서를 가르는 선이 있다면, 그 선을 절묘하게 밟고 있는 책이다.

학원계의 전설인 이만기가 추천한 것을 보면 수험서(혹은 지도서)로도 적절한 모양이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침대 맡에서 읽다가 방치했던 것인데,

수험생이 아닌 내가 보기에는 각 시에 대한 저자의 단평들은 너절한 것이 많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시들 중에 기억 속에 묻혀있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효용이 있었다.  


1.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온데 그만 들어가보셔얍지요.)

송수권 ‘여승’ 중


‘우는 듯 웃는 듯’으로 표현된 인상이 궁금하다.

 이야기시가 콩트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2.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내가 알던 ‘벼람박’이 바람벽의 음운도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충청도 사투리였다. 나는 얼마나 많은 충청도 사투리를 표준어로 알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시인의 말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월북이후 집필한 ‘집게네 네 형제’라는 동화시도 인상적이다.

방랑과 고뇌의 청년은 사라지고,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호호할아버지가 남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다.


3.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시를 쓴다는 일은 /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

누가 대신 자는가./ 남의 잠은 잠의 평화이고/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이라고

오규원. ‘남들이 시를 쓸 때’ 중


남 같은 시를 쓰는 것을 견딜 수 없어야 시인이다.

만만한 말이 아니다.


4.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은 대학 시절 분명히 읽었던 시집인데,

수록된 시들이 처음 본 것 마냥 낯설었다. 어린 시절 독서의 허망함을 다시 느낀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좋은 시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