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당 당수’란 별명을 갖고 있는 아나운서 이숙영씨....

 배우자 몰래 한 명 정도의 애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조금만 비틀어 볼까 합니다. 

 반론도 아니고.  론이라 할만한 건도 아닙니다.  그래서 비틀기 입니다. 
 

1. 인간은 누구나 상대에게 구속되어 지는 것은 거부하려 듭니다. 

   하지만 일정부분 상대방을 구속하고 싶어 하려는(결혼 전후에 관계 없이)

   성질 또한 갖고 있음이 사실 입니다.  그래서 일부일처제가 인간 의

   본성에 반한 형벌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일부일처제는 상대에  대한 배타적 관계 독점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는 가장 잘 부합하는 제도이기 때문

   일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형벌처럼 작용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으며, 동일한  사람 에게도 상황이나 당면한 현안에 따라

   때론 구속으로, 때론 선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을 '형벌'로 단정한 후

   이숙영씨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애인 만들기를 엄청난 구조적 모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일탈 정도로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지극히 좃선스런 전개이며... 

   만일,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쩌다가 주어 삼킨 표현이었다면

   함량미달인 얘기를 한것으로 보입니다.


 

2. 어쨌거나 그 해소 방안으로 한 명 정도의 플러스 알파를 許 하자고

    한다치면,  어차피 인간의 본성에 반한 일부일처제 때문에 내재된 불만을

    해소하는 방안이라면 굳이 '한 명 정도'일 까닭은 무엇인가?

    한 명 보다는 두 명이, 두 명 보다는 여러 명의 소울 메이트(?)를 두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도 더욱 부합하는 길이요,

    보다 확실하게 형벌을 파훼 하는 길이 될 것 같은데 말 입니다. 

    그런데 한 명 정도로 국한한 것은 아마도 '배우자에게 안 들키고'라는

    조건에 부합시킴과, 수 명의 애인을 許 하라고 했을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이 사회에서 벌어 질 때), 올 수 있는 혼란에 대한

     경계였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기란 깨는 것이 힘든 것이지, 한 번 깬 금기가 확대되는 것은

    순식간이며.  아무리 경계를 한 들 이러한 주장은 심히 위험한 까닭을

     갖게 됩니다. 여러 딴지거리가 있지만 접고 본론에 들어 갑니다.


 

3. 소울메이트를 許 하는 전제조건으로 배우자에게 어쩌고 저쩌고..........

    웃음이 나오는 얘기 입니다.

     아마 이숙영씨가 얘기한 소울 메이트는 외롭고 힘들때 웃고 떠들수있는

     마음 편히 앉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는 일반적인 만남을 갖는

     그런  남자 하나쯤, 여자 하나쯤 만들어라 하는 얘기치곤 참으로 말이

     어렵고 거창한 단어를 갖다 붙혔습니다.

      진정한 소울 메이트는 육체적 정신적 관계가 소통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고 생각 합니다. 단순하게 만나지는 사람에게

     그런 표현을 쓴다면 아주 억측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여자 입장에서 보면 도덕적, 윤리적 유교사관적 입장에서 육체의

      허락은 하지않고 정신적인 교류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자를 만나려는

      그것이 마치 무슨 영화에 나오는 로맨스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혹 ..

      있을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만남은 단순 시간 죽이기 만남

      이거나 그것보다는 다른 차원의 만남이 주를 이룰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자들의 이기적인 심리는 외간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으면

      정당하고 남편 보기에도 떳떳한 만남이 될거라 생각하는 모양 입니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정신보다 몸이 더 중요한 이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은 허락 되는데 윤리적인 사회적인 문제로 몸은

      허락 할수 없다는 비 논리적 사고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 하게

      됩니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사건은 본능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서로

      나누는 더 정결한 의식 같은거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신혼 첫날밤을 정결하고 성스럽게 보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숙영씨가 이야기한 소을 메이트

      라는 지칭을 한것은 아주 넌센스 이며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 아니였나

      싶을만큼 냉소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안 들키고....너그러워 지고....하는 것은 다 미래의 일을 가정한 것일진데. 

    하지만 애인을 두는 것은 바로 현재의 일이며.  지금 그런 조건이

    충족된 것이 아니고, 미래에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실질적인 사후 실천을 의미 한다는 것이로 보입니다.

    일부일처제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되묻는 주례사 또한 사전 언약과 사후실천의 문제 입니다. 

 

    그렇다면 애인만들기의 전제조건(사실상의 구속)인 가정에 충실하기는

    왜 형벌이 아닌가?  말장난인가?  맞습니다.  말장난 입니다. 

    내 논리가 말 장난인 것처럼 이숙영씨의 이러  이러한 전제조건

    아래에서의 애인만들기도 말장난일 뿐 입니다. 

    안 들키려 했는데, 들켜 버렸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본인의 애초

    주장과는 관계 없다고 말할 면피용일 뿐 입니다. 

    정말 말장난 그만 했으면 합니다. 
    

 

4. 이숙영씨는 그러면서 그것이 늘어 가는 이혼율에 대한 대안이라고

    역설 합니다.  어이가 없어 보이는데?  지금 애인이 없어서 이혼하는

    가정이 과연 전체 이혼 중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분석은

    해 보고 하는 얘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혼율 급증의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 '황혼이혼'에 이숙영씨의

    주장이 어떤 솔루션이 될 지, 이혼율 급증의 또 다른 원인인 결혼기피

    현상(이혼율 분모의 축소부분)에 이숙영 식의 사고방식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제대로 짚어 보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이숙영씨는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이혼 대신에 다른 방안을

    찾자는 취지였을 것이고,  이숙영씨의 해결방안이 어떤 가정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마땅치 않은 것은 전후가 틀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입니다  '가정지키기'를 목적으로 '애인만들기'를 주장했다기보다

    애인 만들기를 포장하기 위하여 가정지키기를 끌어다 부쳤다는

    느낌를 받는것은 무엇일까 생각케 됩니다.
 

    性 마케팅에 천재적 소질을 발휘하여 자신의 결혼생활까지 상품화하는

    박진영류나, 자신이 일반 대중에 비해 무척이나 깨인 사고의 소유자로

    굳게 믿고 있는 듯한 조영남류나, 애정당 당수라는 표현의 이중성

    (열린 사고 : 싸구려 이미지)은 생각해 보았는지?

    그 호칭을 좋아라 하는 이숙영류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지

    관심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난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만 떠들었으면 대꾸도 안 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다만, 자신의 사고와 생활패턴에 마치 커다란 상위가치가 내재된 것 마냥

   이것 저것 막 끌어다 부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고,  기왕 끌어 들일 거면

   좀 제대로 끌어 들였으면 하고 바랄 뿐 입니다. 

   애인 만들려면 만들어라, 그래서 안 들키고 잘 살아라.  

   그리고 솔직하게 나는 이리 살 터이니 간섭 말라고 해라. 

   하지만 뭔 큰것이 있는양 포장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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