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디오 방송을 듣던 시절은 70 년대 후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심야 AM 방송 이었습니다. 당시 두 방송 모두 황인용, 차인태 같은 아나운서가 진행을 했는데....

당시 황인용은 장수만세라는 TV 노인 프로를, 차인태는 장학퀴즈라는 퀴즈 프로를 진행 했었습니다.

( 둘다 일요일 오전에 방송했던 프로그램)


두 사람의 변신은 헐크에 가까울 정도라고도 할수 있는데 그것은 아나운서들만의 테크닉 일 것입니다.
당시 방송의 전문 D.J. 로는 최동욱 (그는 한국 최초의 D.J.현재 미국에서 라디오 코리아 던가 서울 인가를 운영함),
이종환 ( 명동에서 음악 감상실 쉘부르를 운영했었음),박원웅( 무교동에서 음악 감상실 무아를 운영했었음) ,
김광환 ( 당시 기억은 안나는데 시내의 음악 감상실에 출연을 함)  같은 진행자가 있었는데 전문 D.J.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꼭 자기의 이름이 함께 사용했습니다.

 

 


박원웅과 함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김광환의 팝스다이알,,,,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걸 시시콜콜 기억하고 있는 나는 머리가 진짜 좋은 사람일까?

아님 쫌생이과에 속하는걸까? 아리송 합니다... 어쨋거나 기억이 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읽는 분들이 그냥 알아서 대충 넘어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80 년대에 들어서 그동안 방송에서 자주 헤메던 (버벅 거리던) 아나운서 출신의
김기덕이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면서 미국의 미드나이트 스페셜의 울프만 잭 같은
개성있는  진행으로 인기를 모았었습니다.


그러나 80 년대에 전국 D.J.  콘테스트라는 행사를 통해 괴물 D.J.가 등장 합니다.
그는 프로그레시브 락, 아트락 을 전문적으로 소개했던 성시완 입니다.
 (지금은 시완 레이블을 설립 아트락 음반을 발매 합니다)
90 년대에는 월간 팝송이라는 잡지의 기자 출신의 ... 이름이 생각이 않나는군요.


라디오에서 가끔 재즈를 소개하는 코너에 등장하던 이들중 생각나는 사람은
영화음악을 하던 정성조  입니다. 지금의 방송은 연예인 들이 진행을 하면서
밑도끝도 없는 농담과 잦은 전화 리퀘스트 등으로 라디오 방송 본연의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 연예인 중에서 최화정 같이 나름대로 적당한 수다 스타일을 확립한 사람도 있고,
배철수 처럼 봉창 두들기는 듯한 특유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확립한 이들도 있긴 합니다.)


그 시절 또다른 심야 디제이가 있었는데 나이트 클럽의 디스코 디제이 입니다.
국내 최초 최고의 디제이는 80 년대 당시 50 이 가까운 나이의 독보적인 스타일의
이진.. (당시 그의 자동차는 오픈 스포츠카를 포함해서 4대를 가지고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80 년대 중반에는 국내 최초의 멤버쉽 클럽 루머스가 크라운호텔 옆에 오픈 했으며
오너는 스타일리스트 중 하나인 하용수씨가 있습니다.
(전직 배우이기도한 그는 후일 베이직 브랜드의 패션 디자이너가 됨) 
 
부산의 멤버쉽 스타일의 최초의 클럽은 조방앞의 다운타운 클럽.
아무튼  루머스 이후로는 댄스 음악을 정교히 믹싱 플레이하는 믹싱 디제이가 등장 합니다.
ㅇ양의 H 씨는 모델로 알려졌는데 그도 이태원 클럽의 믹싱 디제이 출신.
한마디로 짧고 간결한 멘트, 정중했던 분위기의 예전 심야 라디오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방송일 뿐이고 우리네 추억속에 잠겨져 있는것은 다방 디제이였죠.

그때는 디제이를 하면 꽤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직종이였습니다.

종로를 비롯하여 명동, 성균관대 앞 명륜동과 춤과 막걸리를 한꺼번에 먹을 수있었던 충무로

이곳에서 디제이를 본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과도 같은 것이였습니다.

 

얼마전 나가수에서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고래사냥을 부르더군요.

그 고래사냥을 부를 당시 청년들의 놀이 문화는 지금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 당시엔 포크문화가 음악을 선도했고 그 시대 청년문화의 우상이였습니다.

일명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 미국의 히피족들의 문화를 받아드리는 순수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뽕짝 문화를 탈피하려는 청년들의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려는 시기였습니다.

 

 

 

그당시 불멸의 명곡을 전해주었던 뮤지션들은 무교동 꽃잎, 쉘부르가 가장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명동 쉘부르를 돌아  무교동에 들어서면 약속,타임,코러스가 있었고 꽃잎이라는 업소가 있었습니다.

그당시 기억으로는 어니언스, 전인권 , 이광조, 이문세 시인과 촌장, 너를 부른 이종용까지.

술부르에는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김세환 양희은 남궁옥분. 등등 수없이 많은 가수들이 등장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쉘부르와 더불어 청춘 남녀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각론하여.. 그런 통기타 문화가 청년문화를 압도해갔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터라

집에 텔레비젼 오디오등을 가지고 있었던 집은 몇집이 안돼었습니다.

대부분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진공관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러니 당연히 음악다방의 디제이들이 팝송들을 들려주었으니 대단한 인기를 끌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방 뮤직박스에서 긴머리를 휘날리며 몇번 테이블 전화왔습니다.. 하는 모습까지도

멋져보이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약간 촌티가 나지만 귀엽기 그지 없는 미니스커트,

낡은 앨범 속에 숨겨져 있는 나팔 청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그 디제이가 들려주는 음악에

하루를 꼬밖 다방에서 숨죽이며 지냈던 시절이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있는 분들 중에도 아마 그당시에 어떤 디제이분에게 정신나가 하루를 음악 다방에서

보내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전 mbc에서 방송되었던 놀러와 세시봉 4인방 음악도

그때 추억을 아련하게 만드는 정말 좋은 시간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 추억은 아마도 우리를 가장 편하게 만드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래때문에 눈물겹고,노래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 아마도 내 가슴에 그때 그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에서의 디제이들은 전투기 조종사 처럼 묘사 되는데 모두 도끼빗에 빨간마후라를

맨 모습으로 표현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의 유명 디제이는 기억 하지만..
(락앤롤 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앨런 프리드.. 등등)  국내의 디제이는 한낮 놀림 거리의

소재로 등장하는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며 오늘도 머리 식히기 주절거림을 쓰면서 옛 추억에 젖어 봅니다.
이곳을 들리시는 분들도 옛 추억을 떠올리시면서 좋은 시간 만드시길 바래 봅니다.

 

그 옛날 음악다방 디제이 박스속의 디제이의 영상을 보시면서 오늘 글을 마감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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