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7시가 되는 시간에...

퇴근 후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있다.
어느 때나 그랬던 것처럼 후배를 불러내어 회사 앞 당구장에 들른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무슨 숙제라도 하는 것처럼 열심히 정말 열심히 당구를 친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고나 할까?

얼마 안 되는 당구비에 마치 목숨 건 사람처럼 진지하게 당구를 치고는

승부에서 이긴 자의 여유와 진 자의 알 수 없는 비애의 두 얼굴을 나누어 가지며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 하루도 이래서 끝이 나는 건가?


돌아오는 전철 안...
어제 멜론에서 거금을 드려 다운 받은 곡을 틀어본다.
처음엔 좋구나.. 했던 곡이 들으면 들을 수록 마음에 든다.

 

오래 전에 산 책을 꺼내 든다.
항상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선 나에게 지하철 안은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독서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곤 한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짬짬이 지하철만 타면 자연스레 보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이 공동 집필한 책으로 유명했었나 보다.
사실 이 책을 사게 된 동기는 너무도 간단하다.


지금은 블러그로 바뀌어 못 찾아 오는 것인지 관심 밖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플래닛을
운영 할 당시 내 플래닛에 자주 오던 여인의 닉네임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이였다.
그 닉네임이 마음에 걸려 물어보았더니 아주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던 관계로 의심 없이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었는데 사실 다른 문제로 인해 책을 읽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것을
최근에 발견하고는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용으로 책을 읽곤 했다.   


사실 그 책이 재미있다는 그 사람의 말보단 그 책을 읽으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간단 명료하게 결론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였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까진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살짝 열이 받으려고 한다.


단지 소설 초반부에 있었던 글귀만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가끔 그의 손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들고 싶었다. '
 

솔직히 이 부분 내용을 읽자마자 난 이 책의 뒤 내용을 다 짐작해 버리고 말았다.
그만 덮어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두 작가의 상상력과 그간의 경력이 나의 예상조차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으로 두 작가의
책을 살 돈으로 포인트를 충전해 야동이나 다운 받는 것이 이익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 애들의 야동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야동을 보고 있자면 발기가 되기는커녕 그 과감한 실천력과 무한한 상상력에
박수를 치게 된다. 대단한 놈들이다.... 그러니까 일본 놈들이 글케 돈을 벌수있는게 아닌가 싶다.

 
한...10장 정도나 읽었을까?
금방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바로 책장을 덮고 가방 속에 넣으며 가방 속에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생각했다.
정말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
며칠이나 되었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본래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앞의 내용을 항상 잊어버리곤 한다.
머리가 나빠서일까? 나이 탓일까?
도통 무언가를 읽고 나면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에서 새롭다.


지하철용으로 전락한 책이라 그랬을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 책 읽는 속도와는 다르게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계속되는 여주인공의 심리적 상태에 관한 나열들……나름 잘 참고 읽고 있다.
그래.. 뭔가가 있을 거야 뭔가가?..
나의 가슴을 후벼 팔만큼 슬프거나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만큼 기발한 상상력이나
정말 무의식적으로만 느끼고 있던 것을 정확히 집어내는 그 깊은 맛의 글이라던가
뭔가가 있을 거야 뭔가가....'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이 몇 장 남지 않은 글 안에서 이 두 작가는 나를 만족시키길 바랬다.
이윽고 마지막 장..... 끝까지 읽었다.
순간 나는 책을 접어 앞에 있는 지하철 창으로 책을 집어 던지며
" 이런 쑤발 !!!!!!!!!!!!!!!!!!!!!!!!!!!!!!!! " 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도 못하면서 적당한 형용사를 곁들여 표현하는
여자의 마음이나, 너무나 뻔한 3류 연애소설 같은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 차라리 끝을 그리 맺지 말던가.
슬펐다.
왜 그렇게 끝이 나야 하는지
왜 미치도록 사랑한 남녀가 7년후 다시 만나서 그리 되어야 하는지
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chet baker 목소리만큼이나 우울하다. 
일본에 유학 갔던 이경규씨가 말은 안 통하고 얘기할 사람은 없어서 방 안에서
자기와 대화를 했다고 한다.


-자, 밥 먹어야지.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딱히 할 얘기가 없는데도 괜히 말이 고픈 날이 있다.
무슨 얘기든 했으면 좋겠고, 무슨 얘기든 들었으면 좋겠는 그런 날,
나는 이경규씨처럼 내게 말해본다.


-두부장수, 이제 그만 자야지.


-두부징수, 인터넷 죽돌이께서 죽은 안 쑤고 뭐 하는 짓이야.
 

그럼 날름 내 안에 있는 두부2는 말을 받아 치며 죽 쑨다고 열심히 뻐꾸기 날려도
그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라, 자다 보면 뭔가 짜릿한 꿈을 꿀지도 몰라.
그럼 두부3은 그럴 거 없이 동네라도 한 바퀴 뛰지,


두부4는 전화기를 가져다가 전화번호부를 보고, 두부5는 두부4가 누르는 전화를 힐끔
쳐다보면서 혀를 차고, 두부들이 떼로 덤벼들어 일요일을 들었다 내렸다 한다.
요즘은 야한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야한 생각 전문 두부57이 벌써 며칠째 무단결근이다.
 

두부4는 두부6에게 요즘 자신이 말이 고프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럼 말을 먹으라고 두부57의 절친 56이 썰렁하게 받아 치면 두부55는 역시 숫자는 같은 게
좋단 말이지 하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리곤 사악한11과 버릇없는22, 엉뚱한33,
의욕만 왕자병인 44를 불러와 패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자꾸 눈은 침침해져 오고, 머리맡에 놓인 경고등엔 신호가 반짝거린다.
경제적인 개념을 따지지 않아도 대화 상대가 없다는 건 분명히 내가 대화상대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그들이 누리고 싶은 편익에 적극적이지 않고, 편익의 자원도 형편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나 역시 듣보잡 대화 상대 오케이가 될 정도까지 굶주린 것도 아니고, 무례하지 않다.
계약파기. 경제학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것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경제 분석의 대부분이
회귀적이기 때문이다. 아~ 쑤발 뭔 소리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인지?


한가지의 변수를 위해 모든 조건을 통제시킬 수 있는 일은 인간 관계에선 있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꽤 많이 징징댔다, 하고 싶다고, 잘하고 싶다고, 누군가를 만나서
진득거리게 손도 잡아보고 싶다고, 입술이 어쩌고 저쩌고 찧고 까부는 것에도 도가 텄다.


그런데 요즘은 요랬던 내가 낯설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키득거리는 내가 낯설고,
그런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도 낯설다. 오뉴월 서릿발 한 움큼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닌데 말이다.
나라는 정체성의 가장 따사로운 면 중의 하나인 '대책 없이 명랑한' 두부장수 종치네일 따름인데.


추석이 한 달도 안 남았네.
추석이 오면 다시 두부 몇 호를 소환해 강한 에네르기를 투입해야 할까?.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나른한 것일까 달콤 찝찝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오늘은 김동규님의 낯선재회라는 곡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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