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감기 몸살을 핑계로 하루종일 백수처럼 책상머리에 앉아 이생각 저생각.
업무중 일부라고 자료찾아 오랜만에 광고주에 제시할 제안서들을 쓰다가 책상앞 거울에 비친
머리를 보니 덥수룩한 것이 너무 길게 자란 것을 보았다.


나는 머리를 짧게 깍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늘 상 길고 덥수룩한 머리인지라  내딸에게는
늘상 한소리를 듣는데 곱슬머리이다보니 덥수룩하면 보기도 안좋고 나이가 많이 먹어
보이기도 하니 짧게 단정하게 깍는게 좋다는 얘기다.


집요하게 논리적으로 뭐라 얘기를 하기때문에 귀찮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짧게 깍지는 않지만 다듬는 작업은 늘 하는편이다.
이번주 딸아이가 집에 올텐데, 머리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 하기전에 미용실에 들려
머리를 다듬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렸을때 이발소에대한 추억을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 이발관 이름은 그 이름도 찬란한 무궁화 이발관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아주 큼직만한 풍경화 액자가 걸려져 있고 한쪽 벽면엔 수영복 차림의
여자 연예인 달력이 걸려져 있었다. 아마 이발관 주인 아저씨가 실향민 출신이었던 것 같고
일요일 오후 이발관 라디오에서  들리던 국군방송으로 추측해보건대 무궁화 이발관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짐작은 간다.


아버님과는 상당히 친했던 분이셨고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 오셔서
슬픔을 애도하셨던 기억도 있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옛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고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게 인생사 인가보다.

 
지금쯤 그분도 돌아가셨거나 내 어머니처럼 많이 편찮으실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도 정정하셔서 무궁화 이발관을 계속 하실지도 모르겠다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처럼 그 집 아주머니가 면도를 해주셨고,
한 동네에 살던 내 먼 친척쯤 되는 형이 아주 숨이 찰 만큼 머리를 박박 문지르고
차가운 물을 머리위로 부어대며 헹궈주던 그런 이발관이었다.


난 아직도 차가운 물을 머리에 부으면 숨이 멎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당시 어린 내게 무지비할 정도로 머리를 감기면서 찬물을 끼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어떡하든 아버지하고 이발관을 가는 것을 꺼려하고 엄마가 다니시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았었다


그 미장원 이름을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공주 미장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전혀 공주스럽지 않은, 그렇다고 부모님이 왕족스럽게 생기지도 않은
여자 자매들이 머리를 다듬어주는 그런 곳이었는데, 미장원 문을 열어놓고 있어서
미장원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나가던 친구 녀석들이 보기라도 하면
그 어린 나이에도 미장원에서 머리 깎는 것이 어찌 그리도 쪽 팔리게느껴지던지……


중딩이 되고부터 나름대로 어른이 된 표시로 미장원 역사를 마감하고 당당하게
당시 돈 700원인가를 손에 쥐고 이발관 출입을 시작한다
(보통 이발관 간다고 하면 엄마가 1000원을 주면 나머지 거스름돈은 순전히 내차지다)


이 무궁화 이발관에 가면 읽을 게 참 많았다
당시만 해도 읽는 것이 거의 죄악시 되던 만화책을 대놓고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선데이 서울이라는 시대의 영원불멸 후세에 길이 남을 명주간지가 한두 권도 아니고
열 몇 권씩이나 꽂혀 있기도 했다.


나의 인쇄물 19禁의 역사는 단연 이 선데이서울로부터 시작되었다
여배우 얼굴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헤드가 붙은 첫 장하며 몇 페이지를 넘기면
두 쪽을 이어 붙인 형태의 페이지가 좌악 늘어지면 여지없이 비키니 차림의
‘나 오늘 한가해요’ 여인네들이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꽤나 이름을 날렸을 만한 연예인들이었다,
아직도 또렷이 생각나는 건 남정임, 문희, 윤정희의 ‘나 오늘 한가해요’ 포즈이다
지금이야 인터넷 매체로 인해 나 한가해요 정도 장면으로는 중년들 발기부전
증상 치료효과에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것이지만 당시만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선데이 서울의 컨텐츠는 무궁무진 했다.
나 오늘 한가해요 류의 시각적 만족을 위한 사진부터 시작해서 어린이 신문에 007 만화를
그렸던 김삼의 성인만화,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에게 삘이 꽃혀서 뻘짓거리를 하고나서는
고민하는 시골처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사랑의 체험수기.
연예인류가 쓰던 나의 첫날밤의 이야기 등등…


물론 독자들이 직접 쓴 글은 아니었겠지만 글에 등장하는 눈물 젖은 암사슴, 마지막 깃발 등등의
수많은 은유와 비유들은 나의 덜 떨어진 문학적 감성에도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이렇듯 선데이 서울로 피어나기 시작한 청소년기의 성적 호기심은 일명 빨간책 시리즈로
그 절정을 맞이 한다.


요즘이야 ‘야설 이라고 해서 넷품 조금만 팔고, 성인인증만 함 해주면 텍스트로 된 19禁이
넘쳐나는 시절이지만 난 아직도 중,고딩 시절 수업시간에 탐독한 빨간 책만큼 풍부한 은유와
비유에 아울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표현이 풍부한 글들을 본적이 없다.


‘빨간책’
그 당시에는 비슷한 규격과 색감의 빨간 책이 두 종류였다.
블러그 친구들 중에도 기억이 남는 한가지는 영어잡지를 발간하는 회사인지 어딘지 영어책
만드는 곳에서 만들던 세계명작시리즈로 한 면은 영어로 한 면은 한글로 쓰여져 있는 표지가
빨간색의 범행이용 빨간 책이었고 또 한가지가 내가 말하는 그 빨간 책이다.


‘황홀한 사춘기’ ‘꿀딴지. 청춘레슨..등등 그 제목만으로도 ‘그래 이건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 슈퍼스펙터클 에로 로망스야’ 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의 철저히 중 고딩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책. 
터미널 역 앞이나 지금 서울의 진양상가쪽에 가면 아저씨들이 좌판에 전면에는 조악한 주간지를 놓고
합법적인 판매를 하고 눈치가 빤한 중 고딩들이 1000짜리 한장을 주면 좌판 뒤에서 두권을 빼서
노란 봉투에 담아서 주던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판매자와 고객의 철저한 신뢰 속에 진행되는
상행위 방식으로 유통되던 서적이었다.


그 빨간 책 중에서 내가 아직도 불후의 명작이라 꼽고 있는 황홀한 사춘기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나중에 대학에 가서 확인한 바로는 전국에서 모인 놈들 중에 이 책을 모르는 놈들이
없는 걸로 봐서 가히 전국적 흥행을 한 책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빨간 책들의 배경은 일본이다.
등장인물도 마사오, 사찌꼬 어쩌고 하는 일본 이름이고 행간에서 읽혀지는 개방스러운
사회 분위기 또한 일본임이 분명하다. 물론 가끔 준호, 주희, 미란 등등의 한국이름이
등장하는 조악한 번안 물이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성적 환타지가 아니던가?


당시의 우리에게는 준호, 주희 등등의 잘 찾아보면 한 학년에 몇 명씩 발견되는
등장인물보다도 마시오와 사찌코가 훨신 환타스틱한 등장인물들이었다.
이 빨간책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 권에 대여섯 개 정도의 에피소드가 있는 옴니버스 식
구성에 중간 중간 사진이 들어가 있는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의 획기적인 편집이었다.


한 편에서는 테니스 강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옆집 동생이 등장하기도 하고,
학교 수위가 등장하기도 하는 일본식 스토리에, 요샛말로 치자면 페티시 사진 정도쯤 될까?
칼라가 아닌 흑백 류의 사진이었지만 적절한 시각적 만족감을 제공해 주었다.


물론 이런 걸 집에까지 가서 읽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 짓이다
쉬는 시간이면 책상 하나에 열 몇 명씩 모여서 한 놈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마사오의 육중한 손이 사찌꼬의 희고 가냘픈 어깨를 쓸어 내린다… 하는 식으로 읽어 가면
자기 셔츠를 늘어뜨려 어깨를 드러내고 비스무리한 포즈를 취하는 놈
또 어떤 놈은 “오메 디져불겄씨야~~ 얼릉 읽어봐야~~~”
가리지 말어야 이 쒜이야~~ 나도 쪼까 보게~~” 하는 등등의 뻑적지근한 뷴위기 속에서
읽어야 참 맛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 와중에서도 이 책가지고 수익사업을 하는 놈도 있었는데...
시장가격이 수업 분위기 좋고 널널한 국민윤리 시간 같은 시간에 읽으라고
발려주면 100원, 수학이나 영어시간처럼 수업분위기 빡쎈 시간에 빌려주면 50원 이었던 것 같다
(이런 거 가지고 수익사업 했던 쉐이는 지금 생각해도 나쁜 넘이다)
이발소.. 선데이서울...빨간책,… 문화비디오,,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추억의 단어들이다.


내 젊은날의 다큐멘타리는 주체할 수 없는 힘 불끈 솟는 정력대마왕 때문에 늘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요즘 중,고등 동창애들을 모임에가면 그때 그시절얘기에
함박 웃음꽃이 핀다.


과거를 잃는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잃지않으려고 버둥대지않아도 시간이란 정말 놀라운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당시를 회상하면 정말 얼굴 들기 창피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는다,.

지금도 나는 마음 깊은 곳에 남는 그리움을 조금씩 소비하며 하루 하루를 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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