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우리네 술문화는 어떠한가?

하도 세상이 하수선해서인지 아니면 어떡하던 살아내야하는것이 명제인지

마음 편히 술 한잔도 못마시는 사람들도 종종있다.

 

어떤이들은 술을 물처럼 마시고 모든것을 잊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술의 기운을 빌어 세상의 맺힌 것들을 풀어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술을 한잔도 못마시는 범생이인 나는 참 그런 광경을 보면 마음이 아린다.

어쩌자구... 어쩌다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오늘 향연이라는 책은 이런 현대사회의  복잡함에 미친듯이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마시는 한잔의 술자리 이야기 아니다. 아가톤의 집에서 술판을 벌이던 철인, 의사,

시인의 한 무리가 전날의 과음을 이유로 술 마시기를 그치고,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한 헌사를 하기 시작하는것으로부터 향연은 시작된다.

그것은 신으로서의 에로스에 대한 찬미이기도하고,
사랑에 대한 온전한 정의를 도출하기 위한 진지한 토론이기도 하다.

 

수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웅변으로 사랑의 신을 이분하여 정의하고,
의사인 에릭시마코스는 인체 안에서 일어나는 질병과 치유의 과정을 대립에서
조화로 변화시키는 사랑의 역할로 해석한다.


그리고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현학적인 이전 발표자의 논리적 태도와는 달리
남녀의 사랑에 관한 흥미로운 신화 (영화 해드윅에 소개된) 를 이야기한다.


아가톤의 이야기를 지나, 소크라테스의 차례가 되었을 때,
양파처럼 여러 층의 구조로 된 이 이야기는 다시 한 꺼풀 안쪽으로 들어가
만티네이아의 신녀 디오티마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소개한다.


디오티마는 소크라테스와의 산파법적 문답을 통해, 에로스의 중간자적 성격을 구명하고,
가사적(可死的) 존재자들이 (예를 들어 인간이) 사랑을 통해 불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불멸성 자체가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도.
이야기가 일순하였을 때, 주신(酒神)의 축제에서 술이 잔뜩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양상으로 흐른다.

 

내게는 이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사색을 즐기고 젊은이들과 진지한 토론을
하는 모습의 소크라테스에 고착되어있는 나에게 용감한 그리스 중장보병으로서의
그의 모습과 알키비아데스의 끈질긴 구애행동을 은근히 거절하는 부분이 퍽이나 낯설었다.
특히 미소년과 사랑을 나누는 현자 소크라테스의 모습이라니 어쩐지 웃음이 나온다.
당시 아테네의 동성애적 분위기가 참으로 이채롭게 다가온다.

 

70년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뒷골목 막걸리 집에서 니체와 싸르트르에대해 공방을 하던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당시에는 술만 마시면 왜그리 토론에 열을 올렸는지?

개똥철학을 줍어 섬기며 알지도 못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당시에 내 머리 기억속 존재했던 철학자와 시인과 소설가들은 다 어디로 간것일까?
 

수많은 술판을 오가지만 인생과 사상, 예술에 대해 떠드는 자리는 좀처럼 많지 않다.
'가볍게, 가볍게, 더 가볍게'가 요즘 술판의 경향성이다.

심지어 서로 말 한마디 건낼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도 술판은 번영한다. 
알키비아데스가 디오니소스의 난장에서 아가톤의 향연 찾아 돌아오듯, 
술잔을 잠시 내려놓고 짐짓 무거워 가라앉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취흥으로 띄우는 자리를 생각해본다.

 

 

- 책속에서-

 

플라톤의 『법률』에서 인형의 예를 들어 음주를 덕성 함양의 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이유도 같은 문맥에서 설명되어질 수 있다.
그의 비유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감정이라는 뻣뻣한 철사와 이성이라는
유연한 금줄에 의해 움직이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인형과 같다.


만약에 이 인형에 엄청난 양의 술이 부어질 경우,
그 속에 있는 줄들은 뒤엉키고 인형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술을 과도하게 마시면 감정의 줄은 지나치게 활동적이 되고
이성의 줄은 마비되어 자제력을 잃게 된다. 반면에 적당한 양의 술은 인간의 영혼에
자신감과 젊음의 신선함, 부드러움, 온순함을 불어넣어, 그 영혼을 이성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사실 적당한 음주는 우리의 영혼을 유연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순전히 이성적으로만
사유할 때에는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여러 다른 대상들도 사유할 수 있다록 만들어준다.
뿐만 아니라, 술 한 잔 한 잔 마실 때마다 적도를 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는 연습은
감정에 대한 이성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모든 다른 덕목의 함양에 기초가 된다. 
역자해설 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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