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것이 바람인가 나무인가?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니라.
 

                왜 우느냐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 때문에 웁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부닥쳐 오는것의 어긋남 때문에 괴로워하는일이
많아지고 있다.  득실의 문제가 아니다보니 마음 고요히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것 같아 내 감정의 영역에 혼란스러움이 찾아오는 듯 싶다.


사람의 길은 어렵고 그 지혜는 가난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것은.
내가 그 고뇌에서 풀려나고 비탄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남을
그 고삐에 묶어 놓는 일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내마음이 괜시리 섭섭해지는것은 무엇인지 잘모르겠다.
마음 그늘에 야속함을 숨기고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지만  의지없고
마음 추운 입장에서보면 애써 이래야 할까 하는 마음도 들고 뭔지모를
억울한 마음도 든다.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에 마음을 실어 놓으면 그 음악이 마음을 이끌어 간다.
상태가 좋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마음이 들떠 있을 경우나 복잡할 때는 음악 따로 마음 따로가 된다.


시인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고 썼다.
작은 흔들림에도 아파하는 민감함은 나약해 보이기 그지없다.
지금 내가 나약해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따뜻한 마음 잃지않고 넉넉함을
보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  참으로 인간관계에 있어 덕성의 문제는
허술하게 보여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민감한 인체반응을 알러지라고 한다.
1급수에만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이 있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지나친 완벽주의 성격을 결벽증이라고 한다.


늘 죄를 경계하며 사는 순결주의는 종교적 신념의 뿌리다.
티끌같은 단어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수정을 요구하는 사상가들은
진보나 보수가 된다.

 

보통사람들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 마음이 대단히 민감해진다. 

고요함을 잃은 마음은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기때문이다.
흔들리는 것이 나인지 상대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 하나의 무너진 상처 극복이 우선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결론은 부는 바람 피할 까닭이 없고 마음속에 일어 오는

불이나 물이나 어떤 것에든지 도망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고요한 낙하와 성숙한 체념이 삶에 관련있는 모든 것을 진정시킬수 있을 것 같다.
불덤불 같은 고뇌와 고립의 굴다리를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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