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여행을 하다가 어쩌다 만난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남자든 여자든 금방 친해지는 일이 있다.
연인이 되고 친구가 될 인연은 아니어도 마음이 아주 잘 맞기도 하고
서로 사는 곳이 멀어 거기서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만남 후 목적지가 같아 일주일 정도 함께 움직이면서
같이 밥먹고 구경하고 같은 여관에 묵으며 서로의 방을 오가고
웃고 때로는 어색해하기도 하다가 다음 목적지가 달라

어느날 아침 헤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딱히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도
또 만날 날이 있겠지 하면서 마지막 아침을 같이 먹는다.
그 즈음부터 두사람 사이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스민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역까지 바래다주고 손을 흔든다.
그리고 혼자 걸음으로 내디딜 때 문득 깨닫는다. 외로움에 흠뻑 젖은 자신을.
두번 다시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일은 없으리라.
같이 여행을 하는 일도 아마 없으리라.

만난다 해도 어제까지 유쾌하게 웃고 떠들던 여행의 길동무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아까까지 여기에 있어 만질 수 있었는데

이제 다시는 만날 일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 비로소 여행의 추억은 귀중한 빛을 띠고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잔혹하고 허망한지를 안다.
상대방도 지금쯤 외로움에 젖어 있겠지.
지금은 어떤 애인보다 친구보다 육친보다 절실하게 만나고 싶은 존재다.
그러나 이제 몇시간 지나면 서로를 잊고 희미해지고 또 새로운 내일이 시작된다.

그 점이 제일 서글프다. 

 

- 무라카미하루키/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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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는 사물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전혀 없다.

그곳에서는 처음부터 경계선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는 충돌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설사 발생한다 해도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끈질기게 달려든다.

 
 

 
 
 
사람에게는

각각 어떤 특별한 연대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

작은 불꽃 같은 것이다.

주의 깊고 운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유지하여 커다란 횃불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 불꽃은 꺼져 버리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인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두 개의 위성이 그려 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거죠.

또는 마음을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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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소멸 중에서 _ # 1.

 

 

 

 
 
 

시에서 운영하는 코끼리 사육소에 코끼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나는
신문을 통해 알았다. 나는 그날 여느 때처럼 6시 13분에 맞춰 놓은 자명종
시계 소리에 눈을 떠, 부엌에 가서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만들고,
FM방송을 틀고, 토스트를 씹으면서 조간 신문을 식탁 위에 펼쳤다.

 

 

 

 

 

 

코끼리의 소멸 중에서 _ # 2.

 

 

 

 
 

 

코끼리의 오른쪽 뒷다리에는 튼튼하고 묵직한 쇠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고리에서부터 연결된 10미터쯤 길이의 굵은 사슬 끝은 콘크리트 토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쇠고리와 사슬은, 코끼리가 백년동안 힘을
쏟는다 해도 끊지 못할 정도로 튼튼해 보였다.

 

 

 

 

 

 

코끼리의 소멸 중에서 _ # 3.

 

 

 

 

 

 늙은 코끼리 한 마리와 늙은 사육사 한 사람이 이 지상에서
소멸되었다고 해도 사회의 추세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지구는
단조로운 회전을 계속하고, 정치가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성명만을
잇달아 발표하고, 사람들은 하품을 하면서 회사로 나가며,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코끼리의 소멸 중에서 _ # 4.
 
 
 
 
 
 
 
그들은 마치 둘만이 남게 되는
밤을 위해, 낮 동안에는 둘 사이의 친밀함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게끔
주위 깊게 절약해 두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코끼리의 소멸 중에서 _ # 5.
 
 
 
 
 
 
이제 신문에는 거의 코끼리 기사는 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가 한때 코끼리 한 마리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코끼리 광장에 무성했던 풀은 마르고,
주위에서는 마침내 겨울의 기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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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마음 이란 깊은 우물같은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
가끔 떠오르는 것들의 모양을 보고 상상할수밖에..
 
- 무라카미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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