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취미거리들이 널려있다.
우리는 각자의 기호에 따라, 이러한 문화들을 향유한다.
내가 고상한 예술영화를 보든, 교성 가득한 야동을 보든,
그것은 내 꼴림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요. 나는 그럴 권리가 있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환경 아니던가!
P2P며 각종 공유사이트에는 영상과 음원들이 넘쳐나고
공연, 게임, TV, 라디오 등등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나와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이 세상.
지름신의 압박만 이겨낼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 좀 해보고 넘어가야 할께 생겼다.
29마넌밖에 없다고 배째라했떤 사람이 짱 먹던 시절에 이른바 3S정책이라는 게 있었다.
블러그 친구분들은 기억하실 것 같은데.. 어린 친구들은 모르는게 당연하지만...


'Sex, Sports, Screen'


이 3가지 문화적 향유꺼리를 정부가 주도하여 대중에게 제공했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국민들은 그안에 빠져 희희락락 했지만..
에로디됴랑 포르노보고, 프로야구응원하고, 영화보고, TV보고 하면서
쿠데타는 까먹으라는 정치적 수법이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도 그당시 노래가사 한 줄에는 악착같이 벼라별 이유를 다 대면서 검열하고,
대신에 色스러운 교성과 야구장의 함성을 사람들의 귀에 들이밀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유도된 향유는 오히려 현실에 대한 의식을 흐리게 만들고,
대중을 노예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고도의 억압이아니었나싶다.

 

물론 지금은 땡~소리와 함께 반짝반짝한 민대구리를 봐야 하는 엄혹한 시절도 아니고,
삶의 질이란 측면에 있어서도 하와이 가야할 정도로 마이컷다.
이런 시대의 향유를 그때 그 시절과 비교한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우리가 향유하는 것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라는
물음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는 욕망이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욕망에게 충실히 대답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향유한다.
그러한 행위들을 비난 하는 것은 엄연히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는 얼마나 '주체적'으로 그것들을 향유하고 있는 걸까?
무언가를 향유하려는 나의 욕망은 정말 나의 것인가?
혹은 나의 향유라는 행위는 정말 나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걸까?


주말에 노는날에 일한답시고 하루종일 기획안 작성을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취미가 뭔지 아리송하다..
옛날 환경조사서에 취미 독서,,, 이렇게 말하기도 그렇고 음악감상... 이건 더 말이안되는
시츄에이션이다.. 난 뭐하고 산거지? 갑자기 회한이 밀려오면서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오늘의 결론...
지랄 육갑이지만..
P2P에서 야동다운받아 보기가 내 즐거움을 향유하는 유일한 낙이였다는걸...
그러고보면 나도 참 많이 불쌍해... 만삭인 내배를 바라보며... 많이먹어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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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오는 주일..
평소에 저질 체력임을 인지하고 있는터라 어떡하든 체력 비축을 위해서라도
산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친구들 꼬임에 강화 마니산에를 다녀왔다.


산은 내게있어 편하게 마음을 쉴만한 장소는 아니다.
어떤 이들은 산에를 가면 모든 고뇌도 번민도 다 날려버린다하는데 나에게있어 산에서
참모습을 찾는다는건 괜히 겉모습 폼나게 만드는것과 하등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 체력에 비해 산을 잘 타지 못한다.
숨이 턱에 차 헥헥거리면서도 오기가 발동해 산을 타는 것이 싫기에 산을 별로라 한다.
솔직히 성정이 급한 탓도 있어서 더욱 그럴지 모르겠다.
쉽게 지치기도하지만 이상 체질인지 몰라도 회복도 빠르다는게 복이라면 복일 수 있겠다.
내 페이스만 잘 유지한다면 보통 사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산을 잘탈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을 늘 하지만 결과는 늘 생각과 다르게 나온다... 쑤벌~~

 


나를 아는 블러그 친구들도 있지만 체구가 그리 크지않은터라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아
보행을 하면 체력손실이 많을 수 밖에 없어 산을 잘타는 사람과 산행을 하면, 나는 그순간부터
일행과 나는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으로 독립시킨다. 일종의 " 섬 "이 되는셈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산을 타면 나는 언제나 " 혼자 "인셈이다.
일행이 있으면서도 " 혼자 "라는 것, 산행에서 "혼자"라는 것은 내게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 아닐수 없다. 산이 지니는 묵묵함과 포용력과 변함없는 산의
기세와 정기를 나는 온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수없이 너덜거리는 내 삶에서 반드시
만나게되는 고난의 비유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빨리 지나야 할 곳과 느리게 지나야 할 곳이 산에 있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길이
산에 있다, 완만한 비탈과 급한 비탈이 번갈아 있고, 평탄한 길과 험한 길이 수없이 반복된다,
산은 삶을 배울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곳이 아닌가 싶다,

 


산 전문가들이 이야기 하듯이 산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는데..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욕망은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한다,
함허동천을 끼고 마니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생각보다는 가파르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평상심을 잃어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치기어린 마음이 지배하였던 것이 아닐까?


내가 일행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나도 너희들 못지않게 수준급 등산가라는것을?
아니면 용기로 포장된 사내다움이라는 강박관념?


그들을 따라잡으려는 욕망에 휘둘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빨리오라는 채근에 결국
혼미.. 무아의 상태를 접해야만 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않았다. 소리조차도 들리지않는
그 먹먹함.. 깊은 어둠과 습기찬 바닥만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일행들의 웃음소리.. 비단감은 구렁이같은 비웃음의 소리였을까?
하늘의 음악같은 소리였을까?  갑자기 송익필 시선의 산행이라는 시조가 생각났을까?


산길을 가노라 쉬는 걸 잊고, 쉬노라니 가는걸 잊네.

......... 잘 기억이 안나고.............

내 뒷사람 몇이나 앞질러 갔나.
저마다 그 머물곳으로 돌아가려니 또 어찌 다툴일이랴..
(대충 이런 시조였던 것 같다/ 내가 백과사전이 아니여서 기억부재일 수도...)


남보다 돋보이려는 데서, 남보다 앞서려는데서 불행은 시작되는게 아닌가싶다.
남보다 앞서간다고 꿈꾸는삶의 끝점에 반드시 이르는 것도 아니요.
남보다 늦게 간다고 길의 꼭짓점에 도달하지 못할 일도 아닌것을 미처 깨닭지 못한것이다.
욕망이란 강하면 강할 수록, 넘치면 넘칠수록 그 끝은 더욱 보이지 않는게 아닌가싶다.

 


함허동천을 타고 산길을 굽이돌다 보니 만나는 절집...정수사..
내가 한때 불교미술에 미쳐 탱화구경에 도끼자루 썪는줄 몰랐던 시절.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기도도량..정수사..


비가온후라 산아래서 안개피어 오르듯 운무를 뿌리고 오묘한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
온 마음이 청정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산행에서 나의 무지함때문에 생겼던 그 어지러움을
깨끗하게 씻어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오만한 자의 만용을 깊게 다시금 깨우쳐 준 도량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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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쉬하는 말로 누군가 소천을 하면 “돌아 가셨다.“ 라고 말을 한다.
어디로?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기에 돌아 가셨다 말 했을 것이다.
간단하고 명확한 말.

돌아갔다 함은 제 자리로 다시 갔다는 말인 것을 우리는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오늘 내 블러그 이웃인 개굴님의 모친께서 소천하신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잠시 세상 소풍나와 하늘로 돌아가신 개굴님 모친,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머리숙여 진심으로 명복을 빌어 본다.


“돌아 가셨다.”하는 말을 듣는순간 그래도 우리 모두 돌아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많은 날들을 방황하고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간혹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초조감과 외로움을 격어 왔었는데.
잠시의 전화 통화로 받은 내 느낌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위안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이젠 그 외로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무엇을 갖고 갈 것인가?
무엇을 얻어 들고 갈 것인가만 생각하면 될 것같다.


궁금한 것이 하나있다면..
과연 내가 돌아갔을 때 누가 그리워하며 작은 이슬방울 같은 눈물 한 방울로
길을 밝혀 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과연 순수한, 지극히 순수한 눈물을 얻고 살았을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지만 욕심중에 제일 큰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편하다.


소천하신 개굴님 모친께 블러그 친구분들 잠시나마 명복을 빌어주었으면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바로 경조사때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소천하신 분께서 영원히 마음 쉴 터전에 편안함으로 이승의 인연들과 교감하지 않을까싶다.
지금 누구보다도 개굴님께서는 참담함으로 마음 아파 하실 것 같다.


나중에라도 개굴님께서 돌아오시는 날 위로의 한마디라도 서로 나누면 추운 삶에 볓이라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남기고 소식을 전한다.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은 포천 의료원 장례식장이라하니 찾아가 문상이라도 올리면 어떨까싶다.
발인은 11월 5일 오전이 될 것 같다. 오늘 하나님 곁으로 가신 개굴님 모친의 명복을 다시금 빌어본다.

 

 

PS: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문상을하기위해 도착했을때는 영정사진 하나만 달랑있고 장례준비가 안된 상태였어요
개굴님은 모친 소천 때문인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역역하셨습니다.
준비가 안된 상태라 기도만 드리고 왔습니다만 개굴님께는 위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늘 블러그에서만 뵙다가 직접 찾아가 뵈니 약간 겸연쩍기도 했지만 좋은 인연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경황중에 저를 맞이하다보니 예의에 어긋난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하시더군요.
특히 저를 한번도 본적도 없다보니 이름도 모르고 무어라 불러야 할지 당황하시더군요.
그래도 제 닉네임이 저승사자가 아니였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요.

제가 문상객중에 제일 첫번째 손님인터라 괜시리 미안감도 생기고
저역시 조금 당황하긴 햇습니다만 이름과 얼굴을 처음대했더래도 사람이 어려울때
같이하면 힘도생기고 의지할 수있으니 좋은게 아니겠습니까?
친구분들도 부담가지지 마시고 문상을 한번쯤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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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날..
마지막날이라고는 하나 특별하게 이슈가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날이다.
예전에는 마치 가을을 졸업하는 날처럼 그 아쉬움을 달래려 친구들, 혹은 후배들에게
연락하여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귀차니즘때문인지 만나는 것 조차 시들해진 듯 하다,


오늘 광고주에를 들어가야 하는데 연락은 안오고해서 그간 제대로 훓어 보지 못했던
친구 블러그를 탐방하게 되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다른날보다 포스팅한 글들이 더 많이
올라온 듯 싶다, 한달을 마감하는 마지막 날과 첫날은 각오를 다지는 것일까 아니면 가는
세월에 회한을 가져서 그럴까? 풍성한 블러그가 되어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것과는 관계없이 내가 주목하는 블러그는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쓴 사람들의 블러그이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 블러그의 오랜 흔적을 흟어 가는것도 그렇게 재미나 날 수가 없다.
한참 재미붙여 보고있는데 신경질 적으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이럴때 울리는 벨소리 별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집행한 신문광고 때문에 잠깐 들어와 협의할게 있다고 연락이 와서 가게 되었다.


광화문.. 정동길.. 덕수궁.. 시청...
수없이 많은 인연과 추억들이 얼키고 설킨 장소로 내게는 다가온다.
오늘같이 시월의 마지막 날엔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보다 詩처럼 내게 다가오는
이영훈 만들고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 노래가 절절히 다가온다.


이영훈이 죽고난 후 썼다는 작은 글 속에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았다.
연애 시절 그렇게 많은 고궁을 다니고 같은 곳을 여러 번 갔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그와 가 보지 않은 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음악에 늘 나오는 덕수궁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작곡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가끔씩 외로운 일이었다.
그의 가사들은 어쩌다 한 번씩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덕수궁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그의 가사는 더욱 나를 슬프게 한다.

                                 - 김은옥(故 이영훈 작곡가의 아내)


이영훈의 애절한 연가 속에도 이런 명암이 있었다는걸 알았다.
그녀는 끝내 덕수궁에 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남편이 고인이 된 후 덕수궁 옆 정동길에
그의 노래비가 세워졌을때 그때는 덕수궁에 가보았을까?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것도 하나의 서민정책이라고나 할까?
덕수궁 돌담길에 떨어진 낙엽을 청소부들이 수거를 하지않고 그대로 방치를 해놓는걸 보니
모르긴해도 로맨틱한 운치를 한껏 느끼라 서울시가 일반 시민들에게 배려하는게 아닌가싶다.


덕수궁 돌담길의 떨어진 낙엽을 갖은 똥폼 잡고 밟고 걸으며 생각해보니
얼만 안된사이 작년과는 다르게 변한 것이 참 많다,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가족들과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애지중지하던 아이들과도 멀리 떨어져 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고 있는 나를 보고있다.


스산했던 목련꽃 처럼 마음이 송이송이 떨어져 내리던 날
나는 침묵했고 절망했다. 그 침묵의 틈새로 절망은 광기로 변하여,
내 육신과 영혼을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어쩌면 격정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집착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좀 더 차분했어야 했을 것이다.
마음의 매듭을 풀어야 했을 것이다.격정은 종종 인내를 무시하는 것 같다,.
집착은 삶을 구속하는 것인지 모른다.
달려가고 싶고,.. 안아보고 싶고.. 아주 오래도록 곁에 머물게 하고 싶고..
요컨대 두 개의 삶이 아닌 하나의 삶이기를 집요하게 꿈꾸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집에서나 사회생활 속에서 명암이 있었을 것이다.
때로 내게는 밝은 면이 가족들에게는 어두운 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가족들은 늘 이해하고 믿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


오늘 시월의 마지막날에 괜시리 가족들에게 미안해진다.
전화를 걸어 일일히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결국....@%#@$%*&^ 괜한 서글픔이 전해진다.


지금...
내 가슴이 꽉 메고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하고 괘이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것은 무엇인가?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의 자책은 무엇일까?

 
그동안 나는 습내 나고 추운 눅눅한 방에 낮이나 밤이나 뜻없는 고통에 파묻혀,
문밖에 나갈 생각도 안하고 자리에 누어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여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 하며 살지 았않나싶다.


고개를 들어, 허연 창문을 바라보거나 또는 눈을 떠 높은 천정을 응시하며
내 어지러운 마음에 또 하나의 슬픔과 한탄을 되내이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윽박지르며 그동안 자중자애하기를 실천토록 해왔다.


세월이 조금 지나,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보니, 외로운 생각이든다.
앞으로 바람은 더욱 세게 불테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올것인데...
그래도 오늘 시월의 마지막날에 내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진심으로 전한날..


진부하지만 사랑은 오래도록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 가라앉히고 비워가면서
그렇게 기다리는 것.. 기다리다 돌이되어도 그 고통의 무게를 감내하면서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 것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 교훈을 얻은 오늘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Tdhaikovsky / The Seasons Op. 37b                                                     
 October : Autumn Song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
삶이 나를 속이는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함께 했었던 사람과 좋게 헤어지며 서로의 밝은 앞날을 기원해주더라도
뒤돌아 생각해보면 후회도 많고 홀로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할 일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럴 때마다, 삶이 그대를 속였네 어쨌네 하면서 핑계대지 말고
쌀쌀한 날씨에 맨살을 내놓은듯이 한기가 느껴지더라도
맨살의 감정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부딪혀가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그제서야 삶이 나를 속이건, 내가 나를 속이건 간에 관계없이
조금더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창밖은 이미 어둠이 내렸다.
언젠가 어떤 여인에게 썼던 편지의 일부중에 한 글이 생각난다,
삶을 버티게 하는 두개의 기둥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희망"이다라고..


오늘은 하루종일 컨디션 저하와 바이오 리듬이 엉망이였다.
피지컬, 이모션 등등.. 날씨가 주는 병폐이다.
나는 하늘이 내려앉는 구질한 날씨에 아주 알레르기같은 반응을 보인다.
무언가 타는 목마름이 나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다.


내 자신도 그 갈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조울증 환자처럼 나를 자꾸 학대하는 걸 보면 분명 문제이다.
무엇때문인지 마음을 뚜렸이 집어낼 수 없는 것이여서
결핍된 내면의 세계와 주변의 사물들이 혼재되어 내 시야를 어지럽힌다.

 

오늘 하루는 어느 누구도 내 곁에 와서 대화를 요청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직원들은 이러한 내 모습을 너무도 잘안다.

점심조차 같이 먹으러 가자는 소리도 안한다. 무언가 골똘하고 심각하면

사무실 전체가 너무도 조용해진다. 이러면 안돼는데.. 미안하다 직원들에게..


아니나 다를까 그 병이 극에 달했을때 괜한 봉변을 당한 미디어랩 사 직원.
서류 하나가 잘못되어 내게 자문을 구하고 서류 재 발급 요청을 했다가
일의 꼼꼼함을 물어 된통 내게 꾸지람을 듣고 얼굴 벌개어 자기네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결국  서류는 광고주에 들려 자초지조을 설명하고 재발급을 받아 전해주었지만
내내 그 친구의 벌개진 얼굴에 당황스러워했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내일쯤 전화를 걸어 점심이라도 같이하며 기분을 풀어주어야 할 듯 싶다.


갈등과 삶의 매듭은 얽고 풀리라고 있는 것이니 시간이 해답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은 원칙을 준수하며 사는 내게
진리는 분명 아니라는 생각과 꾸며진 세계의 허상에서만 존재할 뿐이라 생각한다.


삶이 나를 속이면 속지 않도록 노력하고 슬퍼할만큼 슬퍼하고 노할 만큼 노해서
그 속아진 삶에 다시금 속지않는 허상을 없애도록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누가 내일이 오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겠나?
안네 프랭크 일기속 말처럼 나도 내일이 오는것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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