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좋은 모습... 늘 행복한 모습....  진정으로 이런 모습을  단 한순간이라도
유지 하기위해 자기 성취를 게을리 하지않고 노력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아무런 사심이 없이도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진정성을 담고 이야기를 하든, 뒷담화식의 기억이란 그릇에 담기 어려운것이든
사람을 평가하는것에 있어서 일반화된 잣대는 없겠지만 그것이 나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할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것만이..평가할수 있는 범위일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평가의 기준이 될까요?
사람의 지위, 명성,부의축적, 사람됨됨이, 학벌, 아마도 현실속 각자의 모습일 겁니다.


그중에서도 저사람은 아주 젠틀한 사람이야?
아주 괜찮은 사람이지.. 또는 저 사람은 왠지 젠틀해서 믿음이 가는 사람이지..
젠틀함을 도대체 뭐라 정의 할수 있을까요?


아마 젠틀하다라는 말속에는 그 사람에대한 신뢰와 인격, 믿음 등등 여러가지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라는 걸 알수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각론을 하여 또 한가지를 얘기한다면 스타일이 젠틀하다라는 표현을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를 아는 분들이 가끔 제게 주시는 말 중에 두부장수님은 젠틀하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음...자화자찬에...왕자병까지.. 읽으면서  욕하지 마소서)
실상 저는 젠틀과는 거리가 한참 먼 속에 욕망만 가득찬 사내인데 말 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속에 갖고 있는 사내의 욕망은 어찌해도 변하지 않는듯 싶습니다.


차라리 매력이 있는 남자라 표현해 주면 고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매력있는 남자란 자기 냄새를 피우는 자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무슨 무슨 주의 주장에 파묻히지 않고 유연한 사람,
그러니 더욱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어찌해도 그렇게는
잘 안되는듯 싶으니 폼 잡고 침묵으로 일관하니 젠틀 하다는 말이 나온듯 싶어 아주 죄송스런 마음 입니다.

 


각설하고......
젠틀함과 그것과 부합하는 스타일이란 단어를 정의한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 생각 납니다.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


젠틀.. 그리고 스타일..
대개 무의식으로 패셔너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그러나 스타일이란 이렇다고 말할수 없는 그 사람의 자질을 말하는 것으로
상류사회 인간이라고 모두가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수 없다.
아니 그들의 거의 대부분은 스타일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스타일이란 돈 주고도 살수가 없다. 옥스포드 사전에는 스타일에 대하여
" 대단히 뛰어난 자질"로 정의하나, 그 뜻은 추상적인 성격인 만큼 가진 사람은 가졌고,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뿐이다. 이러한 스타일이 오늘날 만큼 결여된 시대도 드물다.
우선 남의 위에 서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현상이 두드러 진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인 지미 카터가 선거용으로 자기 이미지를 만들려고
여론 조사기관이나 이미지 메이커들의 조언에 매달리는 꼴이란 참으로 스타일의
부재 현상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할수있다. 사회학이나 P.R.활동의 전문가들이
이토록 자주 불려 다니는 것도 자기 내부에 신념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즉 스타일이 없다는 뜻이다. 스타일이란 겉발림과는 반대 이다.
강한 신념이다. 줄담배에 술꾼에 심술쟁이로 유명했던 처칠은 본 바탕은 천한 남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행력과 강한 신념으로 인해 그를 확고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 중략...


문제는 진짜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진짜인 사람은 그 누구든
스타일이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집안이 어떻다는 말도 아니고, 재산의 유무도 아니다.
개개인이 살아가는 스타일이야 말로 중요하다고 믿고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타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젠틀함을 가질수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생각...
젠틀함을 정의한 시오노 나나미의 생각에 동조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것이 진정 젠틀한 스타일을 유지 할수 있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1.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울수 있는 사람.


2. 윤리,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수 있을 것.
별다른 말이 아니고. 독자적이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란 말 입니다.
말 하기는 쉬우나, 실제로 이 모든 항에 해당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삶이
아닌듯. 참된 용기를 가진 자라고 바꿔 말해도 좋습니다.


3. 궁상 스럽지 않을 것.
육체적으로 전혀 멋있지 않아도 전혀 상관 없으나, 비참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면
역시 곤란하다는 뜻. 또 그런 사람이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거나 하면
같이 있어야 하는 자리는 사양하고 싶어 집니다.
 

4.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성에 부드러운 눈을 돌릴수 있는 사람.
속된 말로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라, 진짜 휴머니스트를 말 합니다.


5. 멋있는 사람.
역시 멋있다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결국은 스타일이 있다는 말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스타일이란 단어의 참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멋있다라고 생각한 사람에
한 합니다. 즉 젠틀함은 스타일과도 같은 맥락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젠틀함이란...
그것은 정중함이란 말로 표현이 가능할것입니다.
뺀질하게 잘차려 입은것만을 젠틀 하다고 할수 없습니다.
영화속에서 젠틀함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은 과거 그레고리 펙이라 생각하는데,
그는 다른 건조한 미남과는 다른 자질을 보여주었는데 그 자질을 젠틀함 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실 인격에 관한 젠틀함을 이야기하기에는 개인적으로 지식도 짧고 아는것도 없습니다.
어떤 인격을 지닌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어떤 인격을 지닌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그걸 가려내기는 내게는 좀 무리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인격적 젠틀이란..
어린시절 윤리 도덕 시간에 배웠던 인간상 규범에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인격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라고 배운것밖에는 알수가 없습니다. 물론 심리학적, 윤리학적으로

문헌적 고찰이라면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시오노 나나미처럼

엄청난 분량의 가치 규범을 만들어 낸다는건 어림없는 생각을 가진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자고 내가 인격 운운해가면서 글을 썼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가볍게 스타일에 대한 내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자해서 이야기 주제를 꺼낸것인데
중언부언 지금 산으로 올라가는 듯해서 잠시 언급을 멈추고  패션의 스타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젠틀함에 대한 마무리를 할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중년의 남성분들이 여자분들을 평가할때 어떻게 평가 하는지 알수없지만..
저 개인적으로 여자분들을 평가할때.. 물론 젊었을때는 인물 위주의 평을 주로 하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게되는것은 스타일입니다.


30-40대의 아줌마들,
혹은 싱글들이라 해도 나이듬의 모습이 아주 젊었을때의 모습을 갖추기란
그리 쉽지 않기에 철저하게 자기를 얼마나 관리 했나 하는 스타일을 보게 됩니다.
그 스타일이라는건.. 하루 아침에 이루워지는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돈이 많다하여 그 스타일이 바꿔지는게 아니라는 뜻 입니다.
일례로 갤러리아 백화점에 가보면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아줌마들 중에는 정말 돈 값어치를
못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음을 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보면 그냥 졸부인가 보다 생각 합니다.
스타일은 자기의 철저한 관리하에 이루워지는 진짜 모습이기 때문 입니다.

 


예를들어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니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
카메라 앵글이 위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여성의 모습이 상상이 갑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 화장 까지도.

남자가 윙팁 구두를 신고 단정히 구두끈을 매고 있다면
역시 그 남성의 넥타이, 헤어스타일 까지도 상상이 됩니다.
오늘은 검정색 로퍼 구두를 신고 간만에 거리의 구두 닦는 곳에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구두를 닦고 있던 아저씨의 발밑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수 많은 구두 중에서
위에 해당하는 고전적 구두는 하나도 없더군요.
새삼 구두의 다양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소니 클락의 앨범에 나오는 근사한 하이힐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남성 구두는
개인적으로는 윙팁인것 같습니다.


50-60 년대....
재즈 뿐만이 아니라 지난 시대의 멋은 요새와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것 같습니다.
구두는 어쩌면 패션의 가장 기본적인 시작인것도 같습니다.
즉..그날의 입을옷을 선택하고 구두를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구두를 먼저 선택하고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선택하는것 어쩌면 그 방법이 좀더 쉽게 매치 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사이 남성들이 윙팁 구두를 신지 않아서인지...
여름철이라 그런지 하이힐 차림의 여성이 눈에띠게 줄었습니다.
평범한 모양의 하이힐은 남성의 시각으로는 분명 매력 그 자체 입니다.


재즈에서 가장 젠틀함을 느낄수 있는 앨범은?
콜트레인이 특유의 사색적인 섹스폰 연주에 정중함을 더한 젠틀한 연주를 들려주고,
정중한 바리톤 음색의 정중한 젠틀함으로 노래하는 자니 하트만 입니다.


이들의 조인트 앨범을 어떤이는 너무 돈냄새 나는 대중적 음악을 한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쩌겠습니까?  이 앨범만큼 젠틀하게 어울리는 앨범이 없는것을요.
젠틀함이 없는 뺀질하게 차려입은 예의 없는 부류를 속된말로 날라리라고 부르는 것이겠죠.

 
 
20080725 Miz.s.net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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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디오 방송을 듣던 시절은 70 년대 후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심야 AM 방송 이었습니다. 당시 두 방송 모두 황인용, 차인태 같은 아나운서가 진행을 했는데....

당시 황인용은 장수만세라는 TV 노인 프로를, 차인태는 장학퀴즈라는 퀴즈 프로를 진행 했었습니다.

( 둘다 일요일 오전에 방송했던 프로그램)


두 사람의 변신은 헐크에 가까울 정도라고도 할수 있는데 그것은 아나운서들만의 테크닉 일 것입니다.
당시 방송의 전문 D.J. 로는 최동욱 (그는 한국 최초의 D.J.현재 미국에서 라디오 코리아 던가 서울 인가를 운영함),
이종환 ( 명동에서 음악 감상실 쉘부르를 운영했었음),박원웅( 무교동에서 음악 감상실 무아를 운영했었음) ,
김광환 ( 당시 기억은 안나는데 시내의 음악 감상실에 출연을 함)  같은 진행자가 있었는데 전문 D.J.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꼭 자기의 이름이 함께 사용했습니다.

 

 


박원웅과 함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김광환의 팝스다이알,,,,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걸 시시콜콜 기억하고 있는 나는 머리가 진짜 좋은 사람일까?

아님 쫌생이과에 속하는걸까? 아리송 합니다... 어쨋거나 기억이 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읽는 분들이 그냥 알아서 대충 넘어가시길 부탁 드립니다. 
 
80 년대에 들어서 그동안 방송에서 자주 헤메던 (버벅 거리던) 아나운서 출신의
김기덕이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면서 미국의 미드나이트 스페셜의 울프만 잭 같은
개성있는  진행으로 인기를 모았었습니다.


그러나 80 년대에 전국 D.J.  콘테스트라는 행사를 통해 괴물 D.J.가 등장 합니다.
그는 프로그레시브 락, 아트락 을 전문적으로 소개했던 성시완 입니다.
 (지금은 시완 레이블을 설립 아트락 음반을 발매 합니다)
90 년대에는 월간 팝송이라는 잡지의 기자 출신의 ... 이름이 생각이 않나는군요.


라디오에서 가끔 재즈를 소개하는 코너에 등장하던 이들중 생각나는 사람은
영화음악을 하던 정성조  입니다. 지금의 방송은 연예인 들이 진행을 하면서
밑도끝도 없는 농담과 잦은 전화 리퀘스트 등으로 라디오 방송 본연의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 연예인 중에서 최화정 같이 나름대로 적당한 수다 스타일을 확립한 사람도 있고,
배철수 처럼 봉창 두들기는 듯한 특유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확립한 이들도 있긴 합니다.)


그 시절 또다른 심야 디제이가 있었는데 나이트 클럽의 디스코 디제이 입니다.
국내 최초 최고의 디제이는 80 년대 당시 50 이 가까운 나이의 독보적인 스타일의
이진.. (당시 그의 자동차는 오픈 스포츠카를 포함해서 4대를 가지고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80 년대 중반에는 국내 최초의 멤버쉽 클럽 루머스가 크라운호텔 옆에 오픈 했으며
오너는 스타일리스트 중 하나인 하용수씨가 있습니다.
(전직 배우이기도한 그는 후일 베이직 브랜드의 패션 디자이너가 됨) 
 
부산의 멤버쉽 스타일의 최초의 클럽은 조방앞의 다운타운 클럽.
아무튼  루머스 이후로는 댄스 음악을 정교히 믹싱 플레이하는 믹싱 디제이가 등장 합니다.
ㅇ양의 H 씨는 모델로 알려졌는데 그도 이태원 클럽의 믹싱 디제이 출신.
한마디로 짧고 간결한 멘트, 정중했던 분위기의 예전 심야 라디오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방송일 뿐이고 우리네 추억속에 잠겨져 있는것은 다방 디제이였죠.

그때는 디제이를 하면 꽤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직종이였습니다.

종로를 비롯하여 명동, 성균관대 앞 명륜동과 춤과 막걸리를 한꺼번에 먹을 수있었던 충무로

이곳에서 디제이를 본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과도 같은 것이였습니다.

 

얼마전 나가수에서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고래사냥을 부르더군요.

그 고래사냥을 부를 당시 청년들의 놀이 문화는 지금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 당시엔 포크문화가 음악을 선도했고 그 시대 청년문화의 우상이였습니다.

일명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 미국의 히피족들의 문화를 받아드리는 순수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뽕짝 문화를 탈피하려는 청년들의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려는 시기였습니다.

 

 

 

그당시 불멸의 명곡을 전해주었던 뮤지션들은 무교동 꽃잎, 쉘부르가 가장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명동 쉘부르를 돌아  무교동에 들어서면 약속,타임,코러스가 있었고 꽃잎이라는 업소가 있었습니다.

그당시 기억으로는 어니언스, 전인권 , 이광조, 이문세 시인과 촌장, 너를 부른 이종용까지.

술부르에는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김세환 양희은 남궁옥분. 등등 수없이 많은 가수들이 등장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쉘부르와 더불어 청춘 남녀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각론하여.. 그런 통기타 문화가 청년문화를 압도해갔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터라

집에 텔레비젼 오디오등을 가지고 있었던 집은 몇집이 안돼었습니다.

대부분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진공관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러니 당연히 음악다방의 디제이들이 팝송들을 들려주었으니 대단한 인기를 끌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방 뮤직박스에서 긴머리를 휘날리며 몇번 테이블 전화왔습니다.. 하는 모습까지도

멋져보이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약간 촌티가 나지만 귀엽기 그지 없는 미니스커트,

낡은 앨범 속에 숨겨져 있는 나팔 청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그 디제이가 들려주는 음악에

하루를 꼬밖 다방에서 숨죽이며 지냈던 시절이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있는 분들 중에도 아마 그당시에 어떤 디제이분에게 정신나가 하루를 음악 다방에서

보내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전 mbc에서 방송되었던 놀러와 세시봉 4인방 음악도

그때 추억을 아련하게 만드는 정말 좋은 시간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 추억은 아마도 우리를 가장 편하게 만드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래때문에 눈물겹고,노래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 아마도 내 가슴에 그때 그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에서의 디제이들은 전투기 조종사 처럼 묘사 되는데 모두 도끼빗에 빨간마후라를

맨 모습으로 표현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의 유명 디제이는 기억 하지만..
(락앤롤 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앨런 프리드.. 등등)  국내의 디제이는 한낮 놀림 거리의

소재로 등장하는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며 오늘도 머리 식히기 주절거림을 쓰면서 옛 추억에 젖어 봅니다.
이곳을 들리시는 분들도 옛 추억을 떠올리시면서 좋은 시간 만드시길 바래 봅니다.

 

그 옛날 음악다방 디제이 박스속의 디제이의 영상을 보시면서 오늘 글을 마감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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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쓰고나서 부터는 안경이 더러워지면 안경닦이부터 찾게 됩니다.
안경을 닦고나면 세상이 한결 더 선명해 지고 깨끗하게 보입니다.
안경이 언제 더러워졌는지를 아는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무명 (霧明)이 끼이면 사람이 집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마음을 쉽게 닦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빈 손으로 태어나고, 마지막 가는 순간도 빈 손으로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아 가면서 본디 빈 손이였던 손에 너무도 많은 것을 담으려 하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고 견고한 사랑을 위하여... 우리가 갖는 마음은 어떤것일까?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가 이승의 마지막 밤에 가지고 있던 일념의 성냥불...
그런 일념으로 시작하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성냥불에 나타나는 이런한 사랑이야기는 일천개의 밤을 깨우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점 성냥불처럼 사랑을 불 밝히고 살아 간다는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 될것이라
생각 합니다. 데이비드 포스터의 음악처럼 완성되지 못한 사랑의 느낌을 안타깝게 전달하는
아쉬움이나 언제나 써놓고 부치지 못하는 편지같은 마음처럼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애타하는것 이것은 지극히 남녀 사랑의 근본적인 발로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애정이 비약되어 사랑하는 누군가를 구속하고 제약하고 감시하고 집착을
한다면... 나(我)라는 상(相)이 없는데 내 것이라 아상 (我相)에 집착 (執着)하여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이 자기에게 연유하는 것이 아닐지 모를일 입니다.

 

응무소주 (應無所住) 이생기심 (而生其心)이란  법정스님이 쓰신 책의 한 대목을 보면
마땅히 마음을 내되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마땅히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일이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살아갈 일이다.
다만 마음을 한쪽으로 머물러 착(着)을 두면 안될일이다.
게으르게 사는것은 복을 까먹는 일이니 적극적으로 복을 짓고 순간순간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헥헥 ~~진짜 어려운 말이네..)

  


내게있어서 아주 중요한 화두는사람을 사랑하는 일 입니다.
이렇게 나이가 먹어도 늘 가슴에 그리는 사랑 ...
사람과 얽혀 사는일에는 꼭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전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누군가와 인연을 갖는다는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 입니다.
그렇지않으면 그 인연은 이내 시들해 버리고 잊어버리기 때문 입니다.
그만큼 내게 있어서는 너무도 중요한 화두이고 생각의 원천 입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면 늘 의심하고 겉으로의
관계를 유지할뿐이라는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 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생긴 버릇 하나가 사랑은 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겟다는 마음 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이 떠나가더라도 그 사람이 잘 되는 일이라면
참으로 좋은 일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아닌 집착 이라면 나와함께 해서 괴롭더라도 붙잡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 뿐일것 입니다.
이런걸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왜 늘 나는 집착의 모순에서 헤어나질 못하는것일까?
집착은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 지는듯 싶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 생각지 않아야 할것에도...
지금 내게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건 집착을 갖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싱대방이 내것이라는 생각, 나 좋을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아집..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맑고 순수하게 누군가를 그리워 하지
못하는것이 아닐까?  언제쯤 내게도 맑음으로 비출수 있는 순수한 마음의 사랑이 찾아와
집착하지 않고 구속하지않고 마음 편히 바라보는 사랑을 할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사치처럼 느껴 집니다.

 

방하착 (放下着)........
놓고 가는것이 아름답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다 ,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으며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기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래도 항상 여여 (如如)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놓고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손을 꼭 쥐고 있으면 얻을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손을 활짝 펴면 세상의 작은것을 얻을수도 있을지 몰라 내일을 위해 오늘도 그저 살아 갑니다.


오늘은 진짜 어려운 이야기를 쓰다보니 철학가 가 된 기분...쩝~~
밑천 다 드러났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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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당 당수’란 별명을 갖고 있는 아나운서 이숙영씨....

 배우자 몰래 한 명 정도의 애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조금만 비틀어 볼까 합니다. 

 반론도 아니고.  론이라 할만한 건도 아닙니다.  그래서 비틀기 입니다. 
 

1. 인간은 누구나 상대에게 구속되어 지는 것은 거부하려 듭니다. 

   하지만 일정부분 상대방을 구속하고 싶어 하려는(결혼 전후에 관계 없이)

   성질 또한 갖고 있음이 사실 입니다.  그래서 일부일처제가 인간 의

   본성에 반한 형벌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일부일처제는 상대에  대한 배타적 관계 독점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는 가장 잘 부합하는 제도이기 때문

   일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형벌처럼 작용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으며, 동일한  사람 에게도 상황이나 당면한 현안에 따라

   때론 구속으로, 때론 선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을 '형벌'로 단정한 후

   이숙영씨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애인 만들기를 엄청난 구조적 모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일탈 정도로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지극히 좃선스런 전개이며... 

   만일,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쩌다가 주어 삼킨 표현이었다면

   함량미달인 얘기를 한것으로 보입니다.


 

2. 어쨌거나 그 해소 방안으로 한 명 정도의 플러스 알파를 許 하자고

    한다치면,  어차피 인간의 본성에 반한 일부일처제 때문에 내재된 불만을

    해소하는 방안이라면 굳이 '한 명 정도'일 까닭은 무엇인가?

    한 명 보다는 두 명이, 두 명 보다는 여러 명의 소울 메이트(?)를 두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도 더욱 부합하는 길이요,

    보다 확실하게 형벌을 파훼 하는 길이 될 것 같은데 말 입니다. 

    그런데 한 명 정도로 국한한 것은 아마도 '배우자에게 안 들키고'라는

    조건에 부합시킴과, 수 명의 애인을 許 하라고 했을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이 사회에서 벌어 질 때), 올 수 있는 혼란에 대한

     경계였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기란 깨는 것이 힘든 것이지, 한 번 깬 금기가 확대되는 것은

    순식간이며.  아무리 경계를 한 들 이러한 주장은 심히 위험한 까닭을

     갖게 됩니다. 여러 딴지거리가 있지만 접고 본론에 들어 갑니다.


 

3. 소울메이트를 許 하는 전제조건으로 배우자에게 어쩌고 저쩌고..........

    웃음이 나오는 얘기 입니다.

     아마 이숙영씨가 얘기한 소울 메이트는 외롭고 힘들때 웃고 떠들수있는

     마음 편히 앉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는 일반적인 만남을 갖는

     그런  남자 하나쯤, 여자 하나쯤 만들어라 하는 얘기치곤 참으로 말이

     어렵고 거창한 단어를 갖다 붙혔습니다.

      진정한 소울 메이트는 육체적 정신적 관계가 소통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고 생각 합니다. 단순하게 만나지는 사람에게

     그런 표현을 쓴다면 아주 억측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여자 입장에서 보면 도덕적, 윤리적 유교사관적 입장에서 육체의

      허락은 하지않고 정신적인 교류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자를 만나려는

      그것이 마치 무슨 영화에 나오는 로맨스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혹 ..

      있을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만남은 단순 시간 죽이기 만남

      이거나 그것보다는 다른 차원의 만남이 주를 이룰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자들의 이기적인 심리는 외간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으면

      정당하고 남편 보기에도 떳떳한 만남이 될거라 생각하는 모양 입니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정신보다 몸이 더 중요한 이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은 허락 되는데 윤리적인 사회적인 문제로 몸은

      허락 할수 없다는 비 논리적 사고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 하게

      됩니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사건은 본능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서로

      나누는 더 정결한 의식 같은거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신혼 첫날밤을 정결하고 성스럽게 보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숙영씨가 이야기한 소을 메이트

      라는 지칭을 한것은 아주 넌센스 이며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 아니였나

      싶을만큼 냉소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안 들키고....너그러워 지고....하는 것은 다 미래의 일을 가정한 것일진데. 

    하지만 애인을 두는 것은 바로 현재의 일이며.  지금 그런 조건이

    충족된 것이 아니고, 미래에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실질적인 사후 실천을 의미 한다는 것이로 보입니다.

    일부일처제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되묻는 주례사 또한 사전 언약과 사후실천의 문제 입니다. 

 

    그렇다면 애인만들기의 전제조건(사실상의 구속)인 가정에 충실하기는

    왜 형벌이 아닌가?  말장난인가?  맞습니다.  말장난 입니다. 

    내 논리가 말 장난인 것처럼 이숙영씨의 이러  이러한 전제조건

    아래에서의 애인만들기도 말장난일 뿐 입니다. 

    안 들키려 했는데, 들켜 버렸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본인의 애초

    주장과는 관계 없다고 말할 면피용일 뿐 입니다. 

    정말 말장난 그만 했으면 합니다. 
    

 

4. 이숙영씨는 그러면서 그것이 늘어 가는 이혼율에 대한 대안이라고

    역설 합니다.  어이가 없어 보이는데?  지금 애인이 없어서 이혼하는

    가정이 과연 전체 이혼 중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분석은

    해 보고 하는 얘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혼율 급증의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 '황혼이혼'에 이숙영씨의

    주장이 어떤 솔루션이 될 지, 이혼율 급증의 또 다른 원인인 결혼기피

    현상(이혼율 분모의 축소부분)에 이숙영 식의 사고방식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제대로 짚어 보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이숙영씨는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이혼 대신에 다른 방안을

    찾자는 취지였을 것이고,  이숙영씨의 해결방안이 어떤 가정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마땅치 않은 것은 전후가 틀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입니다  '가정지키기'를 목적으로 '애인만들기'를 주장했다기보다

    애인 만들기를 포장하기 위하여 가정지키기를 끌어다 부쳤다는

    느낌를 받는것은 무엇일까 생각케 됩니다.
 

    性 마케팅에 천재적 소질을 발휘하여 자신의 결혼생활까지 상품화하는

    박진영류나, 자신이 일반 대중에 비해 무척이나 깨인 사고의 소유자로

    굳게 믿고 있는 듯한 조영남류나, 애정당 당수라는 표현의 이중성

    (열린 사고 : 싸구려 이미지)은 생각해 보았는지?

    그 호칭을 좋아라 하는 이숙영류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지

    관심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난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만 떠들었으면 대꾸도 안 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다만, 자신의 사고와 생활패턴에 마치 커다란 상위가치가 내재된 것 마냥

   이것 저것 막 끌어다 부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고,  기왕 끌어 들일 거면

   좀 제대로 끌어 들였으면 하고 바랄 뿐 입니다. 

   애인 만들려면 만들어라, 그래서 안 들키고 잘 살아라.  

   그리고 솔직하게 나는 이리 살 터이니 간섭 말라고 해라. 

   하지만 뭔 큰것이 있는양 포장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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