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조금 오해 있음을 풀어봤으면 좋겠다.

판잣집에 살던 어느 가족이 형편이 잘 풀려 50평짜리 아파트로 옮겼다.
딸은 처음엔 자기만의 방이 생겨서 기뻤지만 점차 혼자놀기에 질려서
딴엔 새롭고 짜릿한 놀이를 생각해냈다.


가면을 쓰고 베란다창만한 방 창문을 열고...
(유리창이 아니어서 닫아놓으면 바깥이 안 보이고 밖에서도 안을 못 들여다 보이는 원웨이 미러),
네글리제 차림으로 누워서는 천정을 향해 다리를 올린 채 벌렸다.


마침 맞은편 아파트 복도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 몇이 우연히 보고 탄성을 질렀다.
어느새 맞은편 아파트는 디카와 망원경을 들고 바라보는 남자들로 가득했다.
뜨거운 반응에 전율과 쾌감을 느끼며 여자는 약올리듯 창을 닫았다.
몇 시간 후 인터넷엔 '가면의 쩍벌녀'가 뜨거운 감자로 올랐다.


그녀에 대해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았다.
미녀다 추녀다, 전문직 여성이다, 프리랜서다, 백조다, 히키코모리다, 에로배우 홍보다,
노출광이다, 남자에 굶주렸다, 성해방론자다, 과격 페미니스트다,
사회불만 표출이다 등등.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은 가면 뒤의 얼굴이었다.


우쭐해진 여자는 자신이 가면을 벗었음을 깜박 잊고,
맞은편 아파트의 남자들이 아직도 각자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창가에 매달려 있는지
궁금해서 창을 조금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가면이 아닌 맨얼굴 상태임을 자각하고는
황급히 창을 닫았으나 이미 플래시가 터진 후였다.
얼굴이 공개됐으니 취직도 시집도 글렀고 주위 사람들 볼 낯도 없다고 자책했다.


꿈이라 비논리적인 부분이 보이는데 실제상황이라면 신고감이 아니였을까?
보려는 욕구와 보이려는 욕구, 드러내려는 욕구와 숨기려는 욕구,
어디까지 내보이고 어디까지 숨기느냐 하는 수위의 문제를 생각케 하는 얘기인 듯 싶다.


 

오늘 아침 후배한테 카톡이 날라왔다.

형... 글은 괜찮은데  너무 쓸쓸해 보인다는 말과 함께 보자고 한다.

내 궁색한 답변으로 변명 비슷한 이야기 하긴 했지만 조금은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글을 써본다.

 

하긴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는 자주 들어와서 특별히 신경 쓸 것도 아니지만

다른이들이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은 분명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글은 글일뿐, 내생활과 분명 차이가 있다. 

감성적인 부분에 공감을 얻기위해 쓰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아주 힘드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내 생활이 윤택하지 못하고 힘이든다면 침묵으로 일관하지 글로 떠벌리거나
글로 아픈 마음을 내색할 성격이 못된다. 물론 글안에 향취나 분위기가 전혀 나와
동떨어진다는건 아니다. 그 글안엔 분명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있고 나의 이미지가 있다.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잘못 오해하여 힘없는 철부지로 느껴질까 걱정이된다.
아마도 나를 보여주는 수위조절에 실패를 한 것은 아닐까 뒤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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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추... 가을이 성큼 문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가을이 다가오는 날, 요즘은 뭔가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소홀히 하는것 같다,
일상의 단조로움이나 매너리즘.. 쇼킹한 그 무엇을 노리는 한방 때문일까?


나한테 한방으로 다가올만한 사건 사고는 없을터이고, 그렇다고 내가 사회적
저명인사도 아니고 기자들이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줄서서 기다리는 일은 없을터이니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빨리빨리 기록으로 양산시켜야 하는데 하루를 복잡하게
지나다보니 그 복잡함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여행을 다녀왔다든가, 하루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를, 글쓰는 공간을 통해
나의 앙금진 마음을 배설하듯 토해냈는데 근래에 들어와서는 특별한 이슈조차도
심드렁해져 글쓰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지난 주말 후배, 지인들과 곤지암 리조트에서 일박으로 쉼을 가졌다.
하루를 부담없이 조용히 보낼 수 있어 힐링을 한 셈인데,
쉼의 자리를 마련해준 분께도 사실 고마움을 표시하지못해 조금은 아쉽다,
언제고 그 고마움은 갚을날이 있지않을까 싶다.


만남...그리고 그안에 속해져 있는 우리들..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손을 뻗치면 닿을 듯 닿을 듯한 곳에 있다.
그곳은 멀리 있지만, 눈에 보이고 손을 뻗치면 닿을 것 같아,
결코 먼 곳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그것이 바로 추억이 아닐까싶다.
추억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슬프지 않다.


쉼을 전제로 어디론가 떠나는 행위는 우리들 생속에 끼워진 한폭의 수채화 같다,
수직적.수평적 질서가 있고, 아군과 적군이 나뉘며, 반목과 싸움, 사랑과 미움이
상존하는 현실을 조금은 멀리하고 마음을 나눌수있는 지인들과 보내는 하룻밤의 향연,
그안에 뭉쳐있는 강렬함은 아마도  서로를 지켜주고자하는 사랑은 아닐까?


눈을 뜨면 조각조각 흩어졌다가, 눈을 감으면 더욱 견고히 맞추어지는,
결코 시들지않을, 지치지않을, 서로의 연을 잡아당기는 사랑이 아닐까싶다,
나는 이 사랑으로 뭉쳐진 자그마한 연을 기쁘게 받아드리고 추억속에 넣고싶다.
그리고 그것은 이렇게 돌아와 정리할때 비로소 추억속에 완성되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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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을 보다  연인들의 이별에대한 이야기가 나와 한번쯤 회고를 해보면 어떨까싶다.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함축해보면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에는 두 가지가 있는것 같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이별하는 경우와 조금씩 조금씩 애정이 소멸해버려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아서 이별하는 경우를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우를 전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헤어지면 "대체 왜?..." 라는 말이 '아멘' 처럼 따라오는 것 같다.

 

지금와 돌이켜보니...
나역시도 그랬던 것이 아닌가싶다. 생각해보면 미궁으로 남는 것이지만..
그녀가 아프다고 했다, 마음이 아펐던 여자, 그 늪에서 자기를 건져주길 원했다.
하지만 난 그녀의 아픔이 늪에 빠져있다 생각지 않았는지 내 아픔이 더 커서인지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 헤어짐을 가진 것인지 갑자기 침묵속에 빠졌고
아마도 그것을 이별 통보 한 것 쯤으로 그녀는 받아드렸을지 모르겠다.
일방적인 침묵을 매개로한 이별 통보였기에 그녀는 대체 왜...를 연발했을지 모르겠다.
왜 떠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나역시 그 이유를 알면 되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경우는 후자였다. 뒤늦게 깨닭은 것이지만....
사랑이란 것. 누구나 한번쯤 신화 같은 사랑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든 것 제쳐두고 벽을 향해 돌진하는 총알처럼 일직선으로 사랑 단지 그 것만을 위해
폭발하며 자기를 던져버리는 모습을 그려보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그런데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이야기들을 우리는 지금 다 잊어버렸다.
아니 이제는 비현실적이라며 외면한다. 세상에서 가장 늠름한 왕자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주를 구해서 온갖 악당들을 해치우고 너무도 멋진 성에 가서
정말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우스워진 것이다.


그런데 참 뻔뻔하게도 우리는 그 우스운 이야기를 반복한다.
진정한 사랑과 사랑의 길 따위의 어깻죽지가 근질거리는 대사를 주워 섬기면서 말이다.
추운 겨울 새벽을 나기위해 드럼통에 온갖 잡동사니를 태운 모닥불에 둘러 선
부랑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갈 삼류 소설 같지도 않은 낯 간지러운 이야기들을
온갖 폼을 재 가며 이야기한다.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를 이별을 앞에 두고 말이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나는 것은...

이별의 끝에는 자숙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줏어 섬겼던 간질스런 대화가 적어도 상대 머릿속에서 사라질때 까지는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왜... 라는 말을 되내이지 않으려면...
모든 이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갑자기 끊기는 경우와 천천히 소멸하는 경우이다.

여러분들이 겪은 이별은 어떤 경우 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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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일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고 할 때, 그때 상정한 내일은 과연 언제일까?
나는 인생의 게이지 어디쯤 와있는가?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루는 다음은 언제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
여유로운 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인가?


벌써 7월이 마감되고 있는데 생각만 많고 실현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른 것에서 이유를 찾을 것 없이 다 실행하지 않았으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실행하지 않은 것, 즉 몸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크건 작건 성취라는 상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들은
모두 몸을 움직여 얻은 것이건만 왜 이렇게 되버린 것일까?


늘어 놓은 일만 십여 가지다.
이러니 일이 제대로 굴러갈 턱이 없다.
하나 손에 잡아 먼지좀 털고 지난 기록을 뒤적이다가
얼마간 보태고 나면 다시 손에 잡아질지 알 수 없다.


펼쳐 놓은 책이 수 권이요, 조만간 만나자 한 이들이 십여 명이요,
마치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는 일이 대여섯 가지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이 또 얼마간일지 모른다.
배우고 싶다고 싸지른 잡기는 또 두어 가지에다가
새로 벌리고 싶은 것이 두서너 가지쯤 될 것이다.


목표와 계획이 없으니 잔모래처럼 부스러질 뿐
어느 하나 영글어 손에 쥐어지지가 않는다. 한숨만 나온다.
결기도 독기도 없다. 그것을 주고 나는 무엇을 얻은 것일까?
인생의 끝에선 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이 더 아프다지..


몸은 가만히 앉아 마우스만 딸깍이고 있는데
생각은 이미 서너 가지 일을 이랬다 저랬다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생각을 먼저 하고 일을 하라고 하지만 어쩌면 먼저 행동하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운동해야지, 하는 생각은
여러 차례 할 수 있어도 일단 신발끈을 묶고 밖으로 나서면
적어도 한두 바퀴는 돌게 될테니. 실행하자. 나만 시작한다면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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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찬 차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눈물인 양 내 마음 안에도 흐르는 것 같습니다.
지겹게도 내리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은 참으로 삭막합니다.
매일 지나다니는 강변 길, 홍수로 밀려간 그 자리에 뿌연 황토 빛 구정물하며 부유물들이
마치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계절의 바람이 스쳐가 듯 6월의 시간이 지나고
7월의 하늘은 우리에게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을 허락 하는 듯 합니다.


7월의 우미갈정모…
마침 나가려 하는데 쏟아지는 빗줄기가 한참을 망설이게 하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작은 약속도 분명 약속일진데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플라토 미술관으로
향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약속이란 원래 즐겁고 행복한 일의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속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자신들의 불문율이 아닐까 싶습니다.


플라토 미술관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는 언젠가 본 엔디워홀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나도 오덕후(otaku)의 끼가 있어 그랬는지 아니면 아주 오래 전에 봐왔던 아주 익숙한
코코 피규어와(?) 사진을 보아서인지 보는 내내 아주 가벼운 흥분을 느끼고 봤다면 슈퍼플랫
원더월드 고급스런 전시회 에게 민망스런 관람이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가 만든 문양 안에 빠지면 마치 ADHD에 걸린 어린아이처럼 정신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나마 해바라기 문양과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동심이 올라와 기분이 좋아지지만요
정말 말 그대로 키치적이고, 오타쿠적이다 라는 말을 대변해주는 작품도 있지만 밝고 환한
모습의 강요되지 않는 웃음도 내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시각적인 환상이 현대미술로의 승화된 모습이었다고 하면 50분 동안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관람료 5000원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번째 미술관으로 고고씽…
약간의 빗줄기가 이동상에 불편함을 주었지만 일민 미술관까지의 나눔은 또 하나의
색다름이었습니다. 탁월한 협업 자들 이란 타이틀의 미술 전시(?) 행위전시(?)
미술에 무뢰한인 나로서는 조금은 당황스럽게 만든 현대미술의 진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들의 미술관이나 철학적 가치를 분명히 전시에 담으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고나 할까?


제대로 그들의 철학을 미술관을 인식할 수 없었음에 미안함이 앞섰지만 그들에게 미술이란
하나의 삶의 절벽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벽이란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한계상황을 말하는 것인데 절체절명의
실존의 극지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솔직히 누구의 작품인지 인지하지 못해서 다만 미안할 뿐이지만 아마도 내가 관람하는 날
오디오만 나오는 독립된 공간, 앉아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잠시의 휴식공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그 소리에 몰두 했었습니다. 마치 그 소리는 제사를 위한 진혼곡 같은
소리로 들렸습니다. 낮은 신음소리는 마지막 생명을 장식하는 장렬한 음악 같았는데..
사실 그 소리가 정확한 소리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천사들의 흐느끼는 소리에
더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누가 천사는 울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처참한 사슬을 비통해하며 그 사슬을 찢고 신 가까이로 다가갈 때 육신의
고통이 너무 처절하여 흐느끼는 천사의 울음소리는 아니었을까? 무한히 부드럽고 깊은 데서
솟구치는 고통과 희열의 소리는 아니었을까 하는 복잡한 심경의 소리는 내가 느끼는 인간의 마지막
음악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예술 작품이 따로 없네요


7월 정모의 미술전시 관람은 극과 극을 체험한 것 같습니다.
좀 색다른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
여인의 맨몸을 찍은 똑같은 사진인데, 하나는 흑백으로 하나는 컬러로 찍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컬러 사진을 볼 때 살의 건강한 빛깔과 매끈한 질감이 느껴져서 정욕(情慾)이 일렁였던 기억이 납니다.

살의 빛깔이 초록과 어울리면, 살의 질감은 손가락 지문 사이마다 살아나서,

감각은 어느덧 촉각으로 전환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똑같은 맨몸을 흑백으로 접할 즈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욕은 흔적도 없습니다.
빛과 어둠에 의해 조율된 하나의 대상이 자리잡고 있을 뿐입니다.
몸이 간직한 아름다움은 풍경의 아름다움처럼 다가올 뿐입니다.


더러 빛에 의해 부각된 젖가슴이나 둔부, 샅 등을 볼 적에도 몸이 지닌 아름다움,
또는 몸에 기록된 삶의 흔적, 몸이 표방하는 삶의 양태 등이 읽혀지는 것이니,
흑백은 단조롭되 보이지 않는 나름대로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삶의 양상을 기록으로 그려내는 일을 흑백이 맡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성향이 강한 흑백의 필름에는 감정이 틈입(闖入)할 사이가 없지요.
객관적으로 삶의 실체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편안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삶이란 것도 편안한 것은 아니질 않나 싶네요.
삶이 힘들었다는 둥, 그래도 좋았다는 둥 하고 생각이나 감정을 집어넣는 것은 때가

다 지난 뒤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컬러 필름보다 흑백의 필름에서 얻는 반응이 느린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미갈의 모임은 주제넘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옆집 할머니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혼자 사시는데 그분은 세탁을 할 때에도 밥을 지을 때도 청소를 할 때에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란
성가를 부릅니다. 손바닥만한 연립주택의 뜰에다 온 힘을 다하여 예쁜 꽃씨를 뿌리고 하루하루
꽃들을 가다듬고 찬송가를 부르며 꽃 넝쿨을 위로위로 올려줍니다


그녀에게 삶이란 외로운 함정도 가망 없는 절벽도 아니며 신에게 예쁜 꽃을 바치는 봉헌의 예식
입니다. 그녀에겐 노인네들의 혼자 사는 청승도 저주도 없습니다. 그녀 여생의 나날 위에
아름다운 수실로 평화의 무늬를 놓아주는 것 같습니다.


우미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이들이 모여 미술 관람을 하는 일, 마치 화단을 가꾸는 할머니를 연상케 합니다.
각자의 마음 화단에 유난히 풍성하고 비옥한 꽃들이 피는 것은 바로 우미갈이라는 작은
마음의 모임이 있어서 더욱 더 빛이 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모임 안에는 늙어서 투명해진 할머니의 착한 평화가 있습니다.
그 투명한 혜안 안에는 참을 수 없는 위기 안에서도 슬기롭게 행복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미갈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나는 즐거운 미사의 시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7월의 향연이 끝났습니다.
8월이 기다려지는 건 행복함을 마구 전해줄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적이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얘기했던 그 누군가의 얘기를
떠올리면서 우리의 우미갈 카페의 결속을 정모를 통해 기적을 만들어 봤으면 합니다.


이번에 모여주셨던 40여명의 우미갈 식구들 만나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우미갈 운영위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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