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속의 차이와 발견한 진면목

 

책 표지에 실려있는 프로필사진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녀의 단정하고도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차 한잔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은데 책 표지의 콘트라스트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표정은 동양적인 단정함보다 고전적이고 우수에 찬 이미지, 그 속에서 강한 어떤 신념이 느껴진다. 그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강인한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최남숙 권사는 평소에 내가 느낀 단순히 신앙에 열심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글 속에는 따뜻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섬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신앙인으로 사는 삶을 넘어, 젊은 시절 음악 교사로서의 경험과 정서적 안정감이 그녀의 글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작가는 음악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규칙적인 멜로디와 비트를 가르는 리듬을 가르치며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해왔다. 그녀의 글은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흐르고, 독자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린다. 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은 그녀는 그 감성을 글 속에 녹여내어, 독자들에게도 같은 안정과 평안을 선사한다.

 

글을 통해 나는 그녀가 얼마나 다채로운 감정을 지닌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도도하고 강인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는 따뜻한 사랑과 배려가 넘쳤고, 그 마음은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은 그녀의 삶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그 신앙은 그녀의 글에 깊이를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발견은 나에게 큰 놀라움이었다. 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내면의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때로는 아주 크다. 그 차이는 그녀를 더욱 매력적이고 특별하게 만든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단순히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과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최남숙의 작품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정서적 깊이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글 속에는 신앙과 음악, 그리고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녹아 있다. 이러한 감성적인 글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제 나는 최남숙 권사를 도도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녀는 글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모습은 참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녀가 얼마나 풍부한 감정을 지닌 사람인지,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최남숙 작가의 글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아버지와 밥상 - 정성과 사랑이 깃든 일상의 서정적 회상

 

책 제목이 아버지와 밥상.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는데

제목이 주는 중압감 때문인지 처음부터 책장을 넘긴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밥상은

어쨌다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와 밥상'은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밥상 차림과 아버지의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피어난 감동과 그리움을 아름답게 담아낸 서정적 산문이다.

이 책은 따뜻한 가정 속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과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랑의 아쉬움을 진솔하게 그려낸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이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완성된 음식들은 가족을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아버지와 딸은 그 밥상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가족의 사랑과 유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아버지는 딸을 향한 깊은 애정을 밥상에서 자주 표현하곤 했다. 자상한 말투로 안부를 묻던 아버지의 모습은 딸에게 큰 위안과 행복을 주었다. 아버지와 함께한 밥상은 딸에게 있어 사랑의 상징이었고, 그 밥상 위에서 나눈 순간들은 마음 깊이 새겨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아버지께 밥상을 차려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후회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바쁜 일상에서 미처 아버지를 위한 시간을 내지 못했던 순간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아버지가 소천한 후, 그 빈자리가 주는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소소한 일상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며,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랑의 깊이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저자의 회고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종종 당연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순간들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아버지와의 식사 시간, 함께 나눈 대화, 작은 웃음소리 등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마음 깊이 새겨진 추억으로 남는다.

 

책 속에서 저자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깊이를 되새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딸의 삶 속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며, 그 사랑은 여전히 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아버지와 밥상'은 독자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더욱 아끼고, 그 순간들이 주는 감동을 깊이 느끼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깨닫게 되고,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아버지와의 밥상 위 추억들은 시간 속에 묻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회사 앞을 지나다 보면 음식점의 음향기기를 통해

기독교 방송이 흘러 나온다  아마도 방송을 통해 음악을 전하는 것은
저작권 법에 위촉되지 않는 것인지 참으로 거리를 걷다 발걸음이

아주 가벼워 짐을 느낀다. 
 
아주 오래 전에는 전파사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때문에 길을 걷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앨범을 살까 말까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할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가게 앞에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음악 감상에 젖기도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발매 일에 맞춰 아침 일찍 음반가게에

들르면 대형 브로마이드를 먼저 선점할 수도 있었고
친한 친구 혹은 여자 친구에게 최신 노래 리스트를 만들어

음반가게에서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MP3가 대중화되고 테이프나 CD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음원을 구입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음반가게를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언제 음반가게에 갔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이니..
그 뒤로 길거리 음악도 듣지 못했다.  
 
음원의 발달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언제든지 손쉽게 들을 수 있어

좋지만 가끔은 공 테이프를 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거나

선물할 노래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설레이던 그 순수함을 망각케 해주는 것 같다. 
 
비가오는 오늘 음반가게를 찾았던 추억이 그리워진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길보드 차트로 음악을 들었던 그 시절이 훨씬 더
낭만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
마음은 가라앉고 길가의 푸른 잎들은 서러움에 통곡 하듯 비를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데.  푸른 잎의 출렁거림 앞에서 옛날을 기억하며 노래 하나를 듣고 싶어 진다. 
 
아주 오래 전 후배 때문에 작은 콘서트에
갔다가 매료된 뚜아에무아의 여성 보컬인 김은영의 노래를 가벼운 마음으로 듣고 싶다.

가끔은 이렇게 감정의 빛깔이 푸르름이 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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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습니다.
동해로 줄지어 몰려간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면서 한해를 보내고

간절함을 가지고 또 새해를 맞이 합니다. 금방이라도 소원이 이뤄질 것을 꿈꾸며 말이죠.


제야의 종소리가 우릴 진정 일깨워 주는가?
해돋이가 우리의 소망을 제대로 실현시켜 주는 가?.
사람들은 그래야 한해가 가고 희망찬 새해가 오는 기대에 산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 아쉬움만 더하고 기대만 더 부풀게 하는 것인 줄 느끼면서도...

잡을 수 없는 허망한 세월때문에 아닌가 싶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라 생각을 해봅니다.

 

들을 귀 있는 자에게 세미한 음성이 들려 옵니다,
"파주군이 가로되 아침이 오 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 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 지니라"
텔레비전 속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비는 분들을 보며...
떠오르는 해가 확실하게 
한가지 소망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일도 해가 꼭 떠올라 준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내일도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은혜 고 기적임을 아시는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 로 돌아 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 로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께로 돌아 가라!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께 있고 우리의 모든 소망이 저로 좇아 나옴이다.

"묵상은 세월을 붙잡고 일깨는 파수꾼의 소리를 가만이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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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베테티니 스타파노 포지가 엮은 길위의 철학은 철학자들의 여행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여행자들이 철학을 정립하고 나름의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삶이 도구이며 수단이였다는 것에 놀랍다.

실제로 새로운 지혜를 얻는 다는 것.
낯선곳에서의 서투름. 불안감 일상적인 삶과는 다른 무섭고 떨리는 여행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와 비슷한 제목을 지닌 에릭호퍼의 길위의 철학자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책이였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에릭호퍼의 책을 살뻔했다는 자그마한 실수 에피소드도 있다.
한마디로 무식하다는 것이겠지만..


전체적인 여행 길위의 철학을 3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떤가 싶다.

1, 에피소드 구성자체가 그리스 철학부터
 실존주의 니체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을 열거함으로 조금은 흥미롭게 구성을 했다는 측면에 반갑다,

 또한 그들의 작은 성찰과 철학적 지위를 깨우치고 노력하는 오직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담백하게 소개하고 각자 한사람의 인생을 엿볼수있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내머리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시대적 상황 등등..

무식의 소치로 메모리 되어지지않는 것은 흠으로 남는다.


2, 노동과 길위의 만남을 통한 그들만의 열정이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방랑을 창조적으로  보여줌에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어쩌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할 수도 있을텐데 현실과 연대하여

노동과  자신이 피력하고자하는 철학적 논제를 경험과 열정으로 가치를 세웠다는 것이

참으로 현대를 사는 나로서는 부끄러울 뿐이다.


3. 깨달음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삶을 디자인하는 그들만의 방법적 실행력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철학자들의 고행은 남다르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철학의 진지함이 책을 통해 적어도 실패를 두려워 하지않는 불안한 미래를 개척해

나갈수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아주 괜찮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아프리카 청년의 아우구스투스의 기독교 정립에 관한 밀라노의 여행,

 이슬람 종교의 기둥을 만든 이븐시나, 알가잘리도 또하나의 배움으로 다가옴은 여행을 통한

진실의 만남이 어떠한 문제를 의심하여 평생 고통속에 갈등하는 것보다 문제제기를 통해

자신에게서 답을 찾는 유용한 도구로서 여행은 훌륭한 것이아닌가 싶다,


토마스 아쿠나스의 진실탐구도 유머스런 그의 몸집때문에 자칫 가벼워질 뻔한 느낌이

있었으나 엄격하고 설득력있는 철학적 탐구는 오늘날 철학의 대가로 우뚝서는데 공감을 자극한다.

루소의 목적지 없는 여행?
젊은 시절 나와 비슷한 취향의 형태의 여행, 노마디즘 형태의 여행. 만남의 우연성
어딘가에 이르기 위한 여행이기보다는 오로지 떠나는 기쁨을 즐기는 여행.

물리적 도덕적압박으로 부터의 해방. 완전한 자연에의 몰입. 우주와 하나됨을
의식 속 존재의 감정을 깨우는 철학적 사유의 기반..

여행은 가끔 이런 형태의 여행도 바람직 하지 않나 싶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정처없는 나그네..

이번에 새롭게 알게된 역사적 지식.
아리스토 텔레스. 프로타고라스 디오니게스
아테네의 시민이 아니였다는 사실.. 그냥 여행자이며 이방인이였다는 사실이 깜놀..

니이체에 대한 그의 여행 행태는 인간주의적 사슬로부터의 자신의 사유를

해방하려는 몸부림 같은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광기를 동반한
여행을 바라보자니 측은 지심이 들기도 한다.


화려한 철학자들의 각자 다른 방식의 여행길,
그 여행을 통해 각자의 세계관과 철학의 지위를 얻은 행태,

낯선길을 따라 자유의 길을 발견하려는 노력..


그것은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단순한 여행자의 소개가 아니고 우리가 알지못했던 지식적 해학을 던져주는

여행길위의 감동과 사색에대해 신나게 풀어놓는 수다와 같은 기분 좋은 풍경이

예상치 못한 선물로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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