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작열하는 날들이다.
태양이 너무 눈이부셔 살인을 한 뫼르소가 생각난다.

나의 외형은 무사안일한데 내면의 세계에선 줄곧 피 흘리는 격전지다. 
 
송곳같이 뾰족한 긴칼을 뽑아들고 사느냐 죽느냐의

결투를 벌이는 유럽의 옛 무사들 처럼 위급하기 이를데 없다. 
 
내 마음 깊은곳을 내려다본다.
두려운일이다. 자신을 해체하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감추고 숨기고 싶은일. 부정하고 싶은 일.
박제가 된 지난 부재의 날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세월의 주름살 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보며 지금 난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다. 
 
욕망의 더미에 눌려 숨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마음 자체를

버리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일까?   
온당하게 이해되지 않지만 오늘 하루만 마음을 열어 내 머리 속에

존재되는 기억들을 환영하고 축하하고 싶다. 
 
흩어진 기억 조각들을 이어 필요한 만큼의 용기를 내어

감추었던 염원을 빌고싶다. 그게 어쩌면 더 진실에 가까울테니깐..




'짧은글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 멈추지 않는다.  (0) 2016.06.22
우산...  (0) 2016.06.16
Keep on Running..  (0) 2016.06.01
제이콥스 음악동호회와 함께..  (0) 2016.05.22
사랑받지못해 꽃이 깔깔 웃었다..  (0) 2014.04.07


날씨 쾌청.. 온도 30도가 넘어간다.
뉴스에선 때이른 해수욕장 개장 소식이 전해진다. 
 
일기예보에서는 불쾌지수를 얘기하고, 친한 이와의 접촉마저 싫어지는 계절,
푹푹 내리쬐는 태양과 눅눅한 습기 모든 것들이 나를 누르는 것 같은
여름의 계절 6월의 시작.   
나는 이 무덥고 무거운 여름 공기 속에서 무엇을 줄여야만 할 것인가? 
 
몸무게?
나의 마음 속에 있는 답답함?
실상 그 답답함이 무엇인지 너무도 답이 정확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나의 무능함도 인정하는 터라 불편함이 앞선다.  
 
회오(悔悟)?
헤아릴 수 없는 인간 마음 속 심연을 좀 더 정리하고 참새떼 같은
변명은 줄여야 할 것 같다. 
 
오십 년을 넘게 살아온 연륜이 모랫벌처럼 쌓여진 생각들을
쉽게 정리하고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묵상을 해보지만
별 뾰족함이 보이지 않는다. .  
 
설령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아 부피가 줄지 않는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자.
송충이 숨는 날 나비가 날아 오름을 생각 한다면 6월 첫날을 지낸 오후 시간,
지금 불어오는 바람도, 내리 쏟는 햇빛도 향유인양 그윽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나에게 주어진 일의 그 성격이나 득실이 상반될 때
어느 쪽으로 쫓아가게 될까? 내가 선택한 사람과 그 먼저 자기의 반려로
작정되어 버린 사람과의 사이 미혹이 생길 때 사람은 어느 편으로 자기를
던지는 것이 옳은가? (이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내가 원하는 일과 내게 부닥쳐오는 일의 어긋남도 여유 있게
받아드릴 수 있는 남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시행착오로 이렇게 매번 반성만 하고
살고 있는지 입에서 자꾸 욕이 나온다.. 
 
이럴 땐 신나는 노래 한 곡이 나를 위로해 주겠지.
가는 거야~~~ 고고씽..





'짧은글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산...  (0) 2016.06.16
장미...  (0) 2016.06.15
제이콥스 음악동호회와 함께..  (0) 2016.05.22
사랑받지못해 꽃이 깔깔 웃었다..  (0) 2014.04.07
방황은 과장될 수록 외롭다.  (0) 2014.03.19

봄날이 가는 5월 하순
사람의 감정은 봄바람 부는 날엔 희망적이고 힘도 차고 그런가 보다  
 
아마도 그 힘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내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지 봄이면 늘 젊어져 의욕에 차오르고
희망적 설계를 하는 것을 보면 올 한 해의 봄도 이렇게 왔다 가고 있다.  
 
주일 봉사를 마치고 지인의 청으로 잠시 눈과 귀를 쉴 수 있는 모임에
참석을 했다. 이들의 활동을 보고 조금은 무엇이나 시작하면
성취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제이콥스 성악 동호회 정기연주회…
그것도 벌써 8번째나 되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
그냥 성악이 좋아 그 목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봄날의 축복을 전한다는 건
봄마다 다시 태어나고 젊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처음 무대를 서보는 사람들도 있고..
두어 번 무대에 서봤으나 아직은 아마추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대에 올라가 헤매는 모습, 모든 게 다 정겹고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들이다.  
 
음 이탈은 기본이고 무대 공포에 가사를 잊고 당황하는 모습하며..
이처럼 무모한 용기에 차오르는 봄날은 희망을 부추긴다.  
 
참으로 찬란한 꽃철에 나도 그들의 축제에 초대되어 잠시 행복해진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함을 안다는 것이라 믿고 싶다.  
 
여름이 시작되는 봄의 막바지..
꿈을 꾸자 불가능을 배제한 무한 가능성의 꿈을.. 
 
내 어린 날의 꿈처럼 하나의 모래알이 돌로 자라는 꿈.
한줄기의 개울물이 거대한 만경창파의 바다가 되는 꿈.
이 봄날 다시 젊어져 한여름 긴 장마의 뿌리까지도 견딜 수 있는
시절의 봄을 잡아보자.












'짧은글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  (0) 2016.06.15
Keep on Running..  (0) 2016.06.01
사랑받지못해 꽃이 깔깔 웃었다..  (0) 2014.04.07
방황은 과장될 수록 외롭다.  (0) 2014.03.19
10월엔...  (0) 2013.09.30

 

 

산다는 것은 예측불허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그저 평범한 일상들이 펼쳐지기를 바라고 고난이나 극복하지 못할
좌절은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열심히 일한만큼 노력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클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직은 그런 때가 되지 않아서인 걸까요? 아직도 제대로 심어지지 않아서
자그마한 시련을 주시는 것인지 내게는 아직도 세상이 시끄럽네요.

 

그래서 봄이 되면 작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림을 가지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봄이 되면 왠지 슈만과 클라라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의 첫 곡인 아름다운 5월에는 이라는 대표적인
사랑 노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카우와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도 자연스럽게
상기가 되고 따뜻한 봄을 맞고자 하는 연인들에게는 연가 곡들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벚꽃이 활짝 핀 4월의 봄은 왔는데도 아직은 내 마음이 추워서일까?
활짝 핀 수다보다는 침묵보다 깊은 한마디의 위로가 더 내게 갈급함은
민들레 꽃씨가 한 끝 깃털에 온 생애를 맡기듯 목이 말라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내 작은 몸짓은 아직도 꽃과 바람과 구름으로 맺어지지 않고 방황 하 듯
고독과 울분에 이르고 있으니 내게도 황홀하고 눈부신 꽃망울 터지는 찬란한
봄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그래서인지 이 봄날에 다들 슈만의 연가 집을 연상하고 떠올리지만 난 고통의 이마 위에
반짝이는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마이너 곡이 내 마음 상태를 나타내주는 것 같아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아마 슈만이 작곡을 했을 때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슈만은 바이올린 소나타 2곡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1번 곡은 개인의 삶과 조직의
삶이 뒤엉켜 정신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작곡을 했던 터라
조금은 우울하고 암울하고 먹먹한 느낌을 주기에 딱 좋은 소나타라 말씀 드리고 싶네요.

 

특히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이 주는 서정성과 피아노가 주는 정열적인 감정을
복합적으로 표현, 조금은 거칠고 통 열한 느낌으로 다가와 무겁게 가라앉은 선율로
느껴지게 하지만 낭만적인 서사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세계가 얼마나
성찰적이고 시적 감각이 있었는가를 나타내 줍니다.

 

올해 제가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마이너를 듣게 된 귀한 시간은 올해 초 내한 공연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공연에서였습니다.
그날의 연주는 상상 이상의 아름다운 공연이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사실 그날 그녀의 연주 백미는 슈만 바이얼린 소나타 보다는 바하의 파르티타 3번을

연주한 것이 인상에 남았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는 템포감각으로 흠잡을 때 없는

인토네이션을 주는 연주는 가히 장관이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 하고 싶습니다.
.
하지만 내게 더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마이너 곡이었습니다
그날 연주회 초대는 제가 늘 아끼고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의 초대였기에 더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음 고통 속 방황을 눈치채고 제게 작은 위안을 주려고 초대를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보며 늘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내 의식을 잠재우려는 게으름과 자포자기한 자조와,
흐느적거리는 흐린 시력과 멍멍한 청력의 나사에 기름치고 닦고 조여서 열정을
회복시켜 주는 귀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힐러리 한의 연주는 너무나 부드럽고 서정적이어서 오히려 듣는 내내 슬픈듯한
느낌까지 드는 그래서인지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았습니다.
힐러리 한을 얼음공주라 표현하는데 과연 감성적 극치를 보여주는 연주를 들으며
얼음공주라는 표현은 과한 표현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물론 제가 듣는 귀가 아직은 열려있지 않고 내 감성에 맞춰진 표현을 생각하다 보니
평론가나 매니아들이 평가하는 냉정하고 평정 심을 잃지 않는 연주가로서의 정확한
평가를 스스로 왜곡되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힐러리 한이 연주한 슈만곡을 블러그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 유투브를
찾아 봤으나 아무리 봐도 없네요. 조금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힐러리 한을 능가하는
기돈크레이머 바이올린 연주와 마르타 아르게히의 피아노 연주는 엄청난 힘을
우리에게 전할 것입니다.

 

원하건대 봄의 날에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께서 펼쳐놓은 생명들 안에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만져 느낄 수 있게
나를 깨어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Sonata no.1 in A minor Op.105 1st movement Mit leidenschaflichem Ausdruck

 

Violin Sonata no.1 in A minor Op.105 2nd movement allegretto 

 

Sonata no.1 in A minor Op.105 3rd movement-Lebhaf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