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바라보는 함박눈.
눈송이가 큰 것을 보니..눈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눈은 사람을 그립게 만드는 마술을 지니고 있는것 같다.
 

사람이 그리워 만나보려 주머니속을 뒤져보니
지갑은 냉기(冷氣)만 서려 있지 않은가? ㅋㅋ 


짐짓 행복의 척도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도덕 교과시간 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은
일종의 자기 변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 삶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그늘을 이웃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젯 밤에도 눈에 홀려 밤에 눈내리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그런데 오늘도 눈은 여전하게 내린다.
출근하다가 황량한 풍경에 눈물이 삐끗..
나이에 안맞게 주책이.. 나이가 먹으니 더 감성적이 되는 듯하다.


어제의 그리움이 정녕 가신 것이 아니었다.
혼자만 눈꽃을 바라보려니 쓸쓸해지는 거였다.
눈꽃이 슬프게 하는 거였다.


그것이었다. 홀로 있고 싶지 않은 것,
지상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포근한 것을 간직하고 싶은 것,
기대고 싶은 것, 결국은 홀로가 아니라고 위로 받고 싶은 것.
그것이 내게 더 절실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이 기계되는 삶을 거부하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며 

자기를 새롭게 창조 할 시간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 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통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우면서 자기에게 부여된 시간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킨 일생들이 있어 과감히 옮겨다 놓는다.

 

세계의 지성이라 일컫는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나 역시 스스로 정화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의 좌표를 한번쯤 신록의 나무처럼 자라는

사람으로 거듭나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를 무겁게 하는 현실들..

그 현실속에서도 싱그럽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들이 불태워 이 세상을 비춰낸 등불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참으로 귀중히 여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블러그 친구들과 함께 해본다.

 

 

 

   

              

 

 

 

 

 

 

 

 

 

 

 

 

 

 

새해가되어 광고주며 내가 알고 있는 분들께 신년인사를 다니고 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않을까 해서 열심히 다니고 있긴 한데
크나큰 성과는 없는것 같아 괜한 심술이 나는 것 같다.


심술을 보태고 보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쁜데 나만 여유로운듯한
이런 느낌 참 생소하게 다가온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을 해보는데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씩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배려한 디테일이 없으니 서비스가 맛이 없는게 당연하다.
그저 맹목적으로 도움을 바라고 있으니 상대에게 감동이 있을턱이 있겠는가? 
기본적인 의도나 목적을 충족하는건 가능할지 몰라도 서로간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는것이라

감동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이마트 카트를 꺼내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무엇으로 디테일을 살려야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새해인사가 될까?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
이것을 깨닫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 나는 얼마나 무능한가?

 
2014년의 오늘, 내가 처한 현상...
차분히 문제를 짚어가며 하나씩 해결하자고 다짐을 해본다.
먼 길을 상당히 더 멀게 돌아온 느낌이다.


그 어떤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지금 이 상태에 처음 도달했을 때에는
내가 대체 왜 여기에 와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초침이 넘어갈수록
결국에는 이곳이 내가 도달할 지점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다.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 어떤 요행도 바라지 말고 이 겨울을 이겨내자.
2014년의 봄은 한껏 화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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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반드시 새벽은 오고야 만다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밤이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밤이 희망 앞에 서 있을 때 그것은 아름다운 새벽을 위한 재창조의 침묵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이야기하면 믿지를 못한다.
마치 희망이 개미가 진딧물을 빨아먹기 위해 진드기의 똥구멍을 쿡쿡 찌르는

그런 것 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희망은 희망사항 일 뿐.. 현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사회적, 보편적, 현대적(?) 기준으로 어딘가에 들이밀기엔 조촐하다 못해

참담한 스펙이고 살면서 그러한 필모그라피를 만들어 온 당사자가 다름 아닌

내 자신이고 보면 딱히 다른 것을 망하거나 탓할 이유는 없는 듯도 하다.


어른과 아이를 가르는 기준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느냐 안 지느냐임을 깨달은 이후론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객쩍은 소리도 안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난 죽어야 될까?
없는 살림에 성인 몰에서 SM 전용 로프를 사다가 목이라도 매달아야 할까?
개인적으로 SM 전용 로프라는 상품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빨랫줄이나 박스 끈, 나이롱 끈으로 묶으면 "대한SM표준기술위원회" 에서 제재라도 가하나?
철물점이나 편의점, 동네슈퍼에서도 구하기 쉽고 널린 게 끈일 텐데 왜 굳이..??? 암튼..


나, 좀 살면 안되나?
내가 누구처럼 생판 모르는 누군가를 막 썰고 저며서 몰래 파묻기를 했나?
내가 누구처럼 장애인 따위는 갈아서 비누로 만드는 게 낫다고 주장한 적 있나?
내가 누구처럼 멀쩡히 잘 있는 금수강산을 파헤쳐 운하를 뚫자고 헛지랄한 적이 있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반문할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너보고 뒈지라 그랬냐'고. '왜 아닌 밤중에 자명고 찢어지는 소리냐'고...

모든 이들이 자신의 눈높이와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욕망을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그 객관적 조건 이면에 숨겨진 자신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타인의 가치를 재발견
혹은 존중과 관용과 사랑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썰 을 푼다


판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얼핏 대단히 번거롭고 불가능해 보일런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 있어선 가장 효율적이고 대단히 확실한 방법이다.
아프리카의 큰코 원숭이는 '배가 젤 많이 나오고 코가 가장 큰 놈'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고 한다.


나는 큰코 원숭이의 '왕'이 될 가장 강력한 자질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내 주위 분들, 오른쪽 눈으론 경멸의 시선을, 왼쪽 눈으론 경외의 시선을 보내 주었다
그래도 왼쪽 눈시깔 덕택에 열심히 희망을 이야기 하며 돈을 벌고 행복해 하고자 한다.


요즘 진심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건 '완전한 내 편' 이라는 믿음이다.
가령 차 사고가 났을 때 바닥에 난 스프레이 자국을 살피다가
"들어온 방향을 보니까, 이건 네 잘못이네"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내가 좀 잘못을 했더라도 내 편한테 삐끗했으면 넌 그날부터 가문의 원수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내편이 아닌 사람에게 어디서 만나도 그들에게
내가 할 말은 "우리 집에 왜 왔니" 뿐이다.


완전한 내편에 대해서 요즘 생각을 많이 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죽을 때까지 '완전한 내편을 고집하자고 약속 또 약속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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