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눈보라가 휘날린다. 문득 나는 하늘과 땅을 휘날리는 눈보라 풍경 속에 어떤 무형의 정신적인 색깔을 발견한다, 사랑의 소명처럼.. 사랑의 비의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
언젠가는 모든 것이 허무로 끝난다 해도 사랑의 위대함 앞에 겸손하고, 그 겸손 속에 한 가닥 인연의 아름다움을 두손 모아 담아보고 싶다. 눈처럼 고요하게 다가오는 다정하고 따스한 미소, 첫눈을 바라보는 설레임처럼 그 사람을 맞을 준비는 정직한 창조성으로 내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심장에 타오르는 그리움을 새겨 볼 수있다면.. 순식간에 인간원점으로 낙하된다해도 그 그리움이 참으로 달콤하겠다. 때론 일상의 시간들 속에 증발되어 버리고 싶은 허무한 감정이 휘감아도 세속을 떠나 한마리 새가 되어 표상을 쫒아 가보고 싶다. 그저 한사람의 존재만을 위해....
오늘 첫눈이 내렸다. 그 첫눈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로 내리는 창조의 활력소가 아니라 하얗고 투명한 빛으로 생명의 기도를 님에게 바치는 첫눈이 되었으면 한다.
책을 읽기 시작을 했는데.. 아주 평범한 할머니...그러나 인상은 아주 푸근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소녀와 여성의 삶" 이라는 장편을 제외하고는 안톤 체홉과 같은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
인간의 진실에 대해 일깨운다고는 하나 모든 소설가 글쟁이들이 다 추구하는
휴머니즘 차원에서는 그닥 감동 또는 공감할 수 없는 단편 소설들이 주를 이루는터라 . 그래도 우리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랑, 결혼, 부부생활, 자신 내면을 바라다보는 시각. 심리학 적인 마음들을 잘 풀어내는 능력 있는 소설가로는 인정할만한 작가...
이번 노벨상을 받은 떠남이란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각기 단편집 내용 요약을 해보면...
1,떠남 2,열정은 독립된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으나..
3,우연 4,머지않아 5,침묵 은 독립된 주제를 다루면서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연작형식이다.
내용 하나하나를 정리하여 내 식대로 무언가를 적으려하다보니 시간이 엄청 걸려
내용정리/[출처] 그 짜릿한 일탈|작성자 현중 블러그에서 퍼옴
▲속악하고 비정한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나, 결국 돌아와, 키우던 염소의 가출에서 대리만족을 얻는 「떠남」은 기실, 일상에 매몰돼 ‘떠나지 못함’을 그리고 있다.
▲가난한 20대 초반 그레이스의 사랑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환상, 일탈과 그 뒤에 다가오는 죄의식과 회한을 그린「열정」 역시, 젊은 날의 열정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관조하는 70대 노작가의 혜안이 번득인다.
▲비합리적인 사랑을 용납할 줄 모르던 학구파 젊은 여성 줄리엣과 어부 에릭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와의 필연을 가장한 우연한 사랑을 그린「우연」.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확고한 의지나 투철한 필연의 결과라기보다, 일상에서 스치는 우연이라는 가르침이 예사롭지 않다.
▲에릭과 동거 중에 낳은 딸 페넬로페를 데리고 귀향길에 오른 줄리엣의 가정적 . 사회적 . 종교적 갈등 그리고 외도의 경계에 서 있는 부모에 대한 낯설음과 상실감으로, 머지않아」딸을 만나기만을 고대하는 어머니의 기대를 버리는 딸의 심리묘사와 상황설정이 작가의 경지를 보여준다.
▲잘 키웠다고 믿은 스물한 살의 딸(페넬로페)의 떠남으로 인해 중년이 된 줄리엣에게 밀려오는 후회와 죄의식. 그리고 “머지않아”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살아갔던 그녀의 엄마처럼, 노년의 줄리엣 자신도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으로 쓸쓸함을 견뎌내는 「침묵」은, 인연의 끈으로 얽히고설킨 우리의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떠남 5개 내용 전체 분석..
1, 5개의 단편 모두 주인공들이 길을 떠난다는 점
어디로 떠나는지 왜 떠나는지 상황설명 부재로 부유하는 느낌은 내용의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것 같다.
2,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원점으로 회귀하는 이야기 구조의 인과적 연결이 절묘.
3, 그들의 삶의 본질은 어디론가 흘러가는지 모르고 산다는 측면 그들이 도달하는 곳은 각각 다르지만 중년의 눈으로 지혜를 동반하여 보는 세상의 대한 관조 세월의 무게를 복잡하지 않게 쳐다보는 그들의 이야기를 엘리스먼로가 대변하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4, 노벨상 받은 책치고는 이슈화되는 문제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나이가 먹음 대충 이해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수다 떨듯 풀어놓은 책 같다 단편이라 그런지 그녀의 작품 안엔 삶의 복잡한 무늬들을 섬세한 관찰력과 구성력은 아주 칭찬해줄 만 하다
5, 여성의 섬세한 자의식과 내면의 풍경을 담담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풀어내는 힘을 가졌다고나 할까?
도덕과 자유 사이의 간극에서 갈등하는 화자를 통해 가부장적 제도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 같다.
내게도 일렁이는 빛무리처럼 다가오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소중한 환상을 두 손으로 길어 담아 봅니다. 제 가슴속에... 때로 홀연히 나는 하나의 이름.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몸짓을 떠올리면서 환상의 묘비에 들린 듯 그 사람을 침묵속에 깊게 맞어 보곤 합니다.
그 사람을 깊게 맞아할때면 불투명하고 안개 낀 환상의 산숲과 들판의 고요 속에 서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공기의 흐름, 바람의 흔들림, 나무의 몸짓, 햇빛의 떨림까지도 순수한 감동으로 다가서는 것 처럼 다 만지고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바삭바삭바사삭... 발걸음 소리가 뚝 끊어지면서 찾아드는 깊은 고요... 가슴 속에 커다란 침묵이 찾아들어 삶의 북풍이 불어올 때 나는 말없이 허무에로 한 발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인간 존재의 깊은 고독의 얼굴과 만나게 됩니다. 그 고독의 얼굴과 마주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기도 하구요.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남자의 정복적 욕망과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화해스러운 욕망의 얼굴을 하고 있노라니 나의 정신 틀은 견딜수없는 파열음을 내고
나를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어느것이 정답일까? 오직 정신적 영혼만을 갈구하는 사랑이 진정성있는 사랑일까? 그 자리에서 두손모아 무엇인가 존재의 해방을 위해 다가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건지 어느것이 진리이고 사람을 사로잡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신은 제가 터득하고자 하는 소망을 알아주시겠지요? 마치 깊은 영혼의 계곡에서 스며나오는 듯한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매혹이 끝나지않는
음악과 같이 깊은 여운을 남겨줍니다.
다가서면 스러지는 이슬 같아서 환상 속에서라도 그사람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늘 행복해하며는 심술궂은 운명의 손이 닿는 것 같아서 나는 어떤일에도 기쁘기 이전에 두려움이 앞서곤 합니다. 그래서 슬픔도 기쁨도 가슴속 깊은 곳에 침전 시켜 버리려 합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순수하게 마음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나의 여건이 주어지길 바랄뿐입니다. 언젠가는 내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거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사랑은 죽지 않는 것이라고.... 이 가을 깊어가는 서정속에 나를 맡겨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은행나무 잎들은 맑은채색의 무늬를 엮어내고 있었지만 길거리의 낙엽들이 반란을 일으키 듯 바람에 이리저리 혼란을 이루는 걸 봤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고 현기증이 나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가을이 주는 묘한 감성은 아마도 영원(신의차원)과 시간(인간차원)의 명합을 시도해보는 그런 계절이 아닌가 싶은데요. 내가 믿는 신께 간절히 사랑하는 해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 받는 계절이 아마도 가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음악가 한명이 바로 브람스 입니다.. 그리고 짙은 커피향도 떠오르구요, 그래서 브람스는 가을.. 아니 만추의 남자가 아닌가 싶어요 이름없는 악사를 아버지로 둔 브람스,, 그는 요한 야코 브람스의 음악적 영향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음악 정규교육을 받지못한 무학의 음악가 입니다.
브람스의 음악적 텍스추어는 묵직한 중저음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람스 음악에 곳곳에 저현의 선율들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니였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뮤직에세이에 올릴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op68 입니다. 교향곡 1번에 전해지는 브람스의 유명한 말이 있지요
" 등뒤에서 다가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 라는 말은 바로 베토벤이 아니였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말하자면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앞세대의 거장 베토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1892년 죽었어도 그 영향은 19세기 내내 베를리오즈 바그너 브람스 등
수없이 많은 유명 작곡가들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향속에 음악적 성과를 나타내려했던 초기작품이니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주는 묘한 쾌감은 아마도 이런 것 에 있지않나 싶습니다. 브람스는 외형적 고전주의의 껍질을 깨고 낭만주의적 내용을 끄집어내어 자신의 광기를 온전히 접합시키는 교향곡이 바로 1번이기 때문입니다.
드러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어울림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브람스 1번을 듣고있노라면 베토벤의 브람스인지 바흐의 브람스인지 잘 모를 정도이고 어쩌면 바흐의 베토벤(교향곡 1번)이고 베토벤의 바흐(레퀴엠)이고, 둘다이고 그렇다 입니다.
다만, 교향곡 1번 4악장 중간부분에 새로운 주제가 나오면서 흡사 시간의 공간으로 아니면 공간이 시간으로 혼동 전화되는 듯한 착각을 주는 대목이 있는데 충분히 탐미적이고 안정감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워낙 많은 평론가들이 말들을 많이해대서..ㅋㅋ
특히 브람스 교향곡 1번과 푸르트뱅글러와 로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음반은 흥미롭습니다 제 뮤직에세이를 많이 읽었던 분들은 이 친구는 푸르트뱅글러만 좋아하나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로린마젤, 클렘펠러 캬랴안, 번스타인, 칼뵘, 너무 많은 지휘자들을 좋아하고 심취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곡을 해석하고 멋지게 연주를 했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것은 바로 푸르트뱅글러와 네덜란드가 자랑하고 싶은 유명한 오케스트라 콘서트허버우 오케스트라..
오늘날 이 오케스트라가 있게해준 푸르트뱅글러... 그후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리카르도 샤이,
현재는 라트비아 출신인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를 맞고 있을정도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정상급 오케스트라 하나쯤 갖는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입니다.
어쨋거나 브람스 심포니 1번 연주가 아주 훌륭해서 내게 결정적으로 대접을 받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것은 궁합이라고 하는 것인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르트뱅글러가 콘서트허바우와 함께하기 때문에 더 특색이 잇다는 것은 정통 후기 낭만파적인 울림이
브람스적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지요? 가장 브람스적인 연주- 그것을 모노토닉한 화려함과 인간적인 감동을 모두 갖춘 연주라고 말입니다. 아마 푸르트뱅글러의 특기인 음색을 만들어내는 여타의 마에스트로가 꿈꾸지 못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분명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브람스를 진짜처럼 표현하는 콘서트허바우 같이
파트너로서 동반을 했다는 것은 환상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오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남모르게 혼자서 상념을 방관하면서 하늘과태양과 별과 빛을 좇으며
호젓한 행복감에 젖어 들고 싶다면 브람스 교향곡 1번과 함께 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11월 중순.. 이제 겨울이 몰려와 가을을 쫒아내려 하는 만추에 브람스를 만나게 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런 음악을 듣게 채찍질해주신 블러그 친구 빛마루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아마도 이 세상의 미소가 아닌 것 같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발견하실 겁니다.
일단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와 Mariss Jansons 지휘로 함께하는 전악장을 들으시고 나서
푸르트뱅글러와 로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 곡을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Brahms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1. Un poco sostenuto -- Allegro 2. Andante sostenuto 3. Un poco allegretto e grazioso 4. Adagio - Piu andante -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 Piu allegro Mariss Jansons , Condu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