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나를 마냥 기다려 주질 않는다는 너무 잘아는 이치를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너무 더워서, 너무도 잘알기 때문에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서늘 바람의 가을이 후회처럼 비를 뿌리고 내 곁에 성큼 성큼 다가온다.


상처도 없으면서 상처 깊은 마음이 되어 자기 상실과 구속을 느낀다.
그래서 남자는 가을엔 지나가는 여자에게도 위로 받고 싶어 지는게 아닌가 싶다.
가을을 반기는 여성은 성모마리아이며 나는 그 가을을 탕자처럼 되돌아 축복 마저도
상처처럼 느끼고 좁은 가슴에 얼굴 묻고 울고 싶어 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
주변의 남자들이 (혹시 게이?/오해 마시라) 나를 유혹한다.
아마도 남자는 가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고, 여자는 가정 속으로 묶으려 드는가 보다,
가을에 남자는 흔들리고 철없는 남자가 되고 싶어한다.


지난 주일 그 유혹의 불씨를 못 견딜 구속으로 받아드리고,  동갑내기 친구들과
1박2일 을왕리와 강화에를 다녀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미롭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려고 했겠지 만 남자들 넷은 밥 먹고 잠 자는게 가을을 가장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으로 아는 듯.. 고독의 항례를 마치고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을왕리 해수욕장에 모여진 젊은이 들..
나도 한때 저렇게 산맥과 산줄기 같은 야망을 지닌 젊은 날의 한때가 있었다.
동화처럼 의 꿈도 있었고 찬란하고 눈부시었던 꿈의 도전도 있었다.

 

언제부터 일까?
나는 내 별 찾기를 잊어버렸다.
버리고 잊으며 살아온 수많은 것들과 함께 내 별 찾기의 숫된 꿈과

내 별 키우기의 젊은 야망도 절로 잊혀진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저 백사장에 모여진 젊은이들..
한잔 술과 군무를 이루는 춤과  사랑의 줄을 놓기 바쁜 폭죽 터트리기 ..
운명의 별,.  행운의 별, 행복의 별을 찾는 지금의 순간들..


그저 한없이 편안해지고 방해 받지 않는다면 그 안에 내 마음도 던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 찾을 자리를 찾는 명분과 함께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흘리는 땀방울의 농도와 내 손마디의 굵기에 정비례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다
내 마음은 그곳 춤추는 행복자리에 나가고 싶지만 그것은 욕심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 나와 함께한 초로의  중년 친구들..
마음에 가을은 분명 부활의 계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의 부활.. 가을에 남자는 부활하여 남자의 이름을 건 아들이 되고
그 남자 아들을 껴안는 부활의 성모가 되는 여자 곁으로 잘 돌아갔 길 빌고 싶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적응 방법, 생활유지 방법, 위로 받고 사기를
돋구어 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을 발견하고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이젠 이것으로 주말의 휴식은 끝났다. 하루분의 상처와 하루분의 피곤과
하루분의 신경질과 하루분의 휴식과 모든 게 어느정도 치료되고 씻겨지고 다독거려진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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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울음이 그칠 듯 하더니  맺고 맺었던 것들을 쏟아내는 것인가?..
새벽부터 지금까지 일만마디로 되돌아 우는 것은 한계절의 사슬을 벗기 위함인가?
살갗에 솟아 오르던 땀이 가시어 까슬까슬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도 온몸으로
울 수 있었던 여름을 놓아 버린 것 때문일 것이다.


비가오는날, 오전에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때가 묻어 잿빛 된 보자기 속에 숨겨졌던 자그마한 일 하나가 성사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경쟁 입찰을 벌였던 정부 산하기관의 TV-CM 제작 업무가 우리에게 로
낙찰이 결정되어 오늘 최종 통보가 왔다.


그날의 긴장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기쁨이 앞선다.
9개 업체가 경쟁을 했던 터라 거의 기대보다는 참여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아직은 너도 죽지 않았다는 용기를 주려는 신의 가호인지 모르겠지만
동반 성장 위원회 측의 축하합니다 라는 메세지와 함께 사무실 전 직원들이
마음껏 포효하듯 웃음을 웃을 수 있음에 탐욕을 털어버린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게 한다.


무언가 일을 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희열감 같은 걸 느낀다.
가슴에 맺혀진 게 그 무엇인가라도 저절로 풀어져 바람에 날아 갈 것 같다.
이러한 쾌감은 가을비에 젖어 들며 몸을 터는 수풀같이 아릿한 느낌을 갖는다.
오늘의 기분은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이 나에게 자유를 주는가?
종교가, 황금이, 명예가, 아니 오복이란 것이 나에게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걸까?
비가오는 오늘 한통의 전화가 한 조각 구름처럼, 한 잎 가랑잎처럼,
가볍게 홀로 서도 빙긋 웃을수있는 기쁨의 소리였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기쁨은 어쩌면 잠시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제작업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차 제시한 콘티를 수정하여 세부 콘티로 만들어 클라이언트측과 최종 기술협약을
맺어야 하는 절차도 남았고 정부 캠페인인 터라 시점에 맞춰 홍보영상이 on-Air
되어야 하기때문에 그 시간을 맞추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 않을 것 같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타임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이제 깊어지기 시작한다. 깊어지는 만큼 내게도 정결하고 정진할 수 있는
가슴 깊숙이 종교의 향내음처럼 삶에 대해 머리 숙여 묵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지길 간절히 바래 본다.


그동안 제게 마음으로 응원해 주셨던 많은 지인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크고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었기에
이런 경쟁에서의 승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준 여러분들이 계셔서
이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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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어요.
따가운 햇살의 커튼을 밀어 올리며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좁다란 하늘의 가슴을 차츰차츰 넓히며 가을이 온 것을 느끼게 됩니다.


3일 연속의 8월의 마지막 연휴가 시작되면서 홀로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어디를 갈까를 고민하지 않았어요. 혼자였던 관계로 떠나면 바로 그곳이
여행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떠나기 전의 흥분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생각하고 떠나려는 사람의 표정이 마치 아픔을 겪는 사람의 표정이라니
무표정에 나는 당황하고, 그 무표정이 또 다른 표정임을 인식하려 깊은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표정이 표정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바로 그 표정 속의 의미는 생활이라는 표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 전 낙향한 후배한테 가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정말 보물섬을 향해 가는 탐험가의 마음처럼 설렘이 왔습니다.
일초의 망설임도 필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임실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이게 고속도로인가 할 정도로 완전 주차장이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연휴를 즐기려는 피서객들의 탈출방법이겠지요.
모든 게 정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흐름은 있었나 봅니다.
평소 시간보다 두 배나 더 걸렸지만 단절로부터 맥박 뛰는 파문을 받게 합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조우...
한 평생 삶의 도처에서 그들과 마주치고 부대끼고 스치고 손잡을 수 있음은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아 헤어지면서 다시는 못 만날 것처럼 생각이 들었지만
며칠 전 본 사람들처럼 스스럼없이 대화가 시작되고 음식을 나누고 백 년도 살지 못할 것이지만
만날 때 마다 설렘이 드는 사람들..


진정으로 후생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세월의 흔적이 이끼처럼 끼기 시작한 오랜 만남의 흔적들이 우리들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염려와 격려, 그리고 또 다른 표정을 안도감 있게 배려하는 손길,
잠시 잠깐 머물다 올라온 하루였지만 버려두고 갈만 한 것이 없는 만남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날 듣고 싶은 교향곡 하나가 있다면 부르크너 교향곡 8번입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최고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브루크너 교향곡의 최고는 8번을 선정 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9번이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개인의 선곡방법으로는 브루크너 8번은 최대의 작품이고 최고는 9번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유는 바로 9번 교향곡의 아다지오이기 때문입니다..
혹 나중에 제가 브루크너 9번을 뮤직에세이로 쓴다면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교향곡의 완성도 면에서도 사실 매니아 층은 환장을 할 만큼 좋아하는 걸 보면
8번이 주는 위상은 대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8번은 두 번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초고 판과 수정 판의 미묘한 차이…


제가 아직은 브루크너를 평가할 만한 사람도 아니고 음악적 지식을 전문가처럼 가지고 있지
않는 터라 깊이 있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차이는 1악장의 피날레 입니다.
초고는 fff로 끝나는 반면에 수정판 이하는 ppp로 끝을 냅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알겠는데
더 미묘한 차이는 솔직히 모르겠네요.. 공부를 더하고 나중에 말씀을 드리죠. 쩝~~


그리고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 관현악의 편성 규모가 커지는 것도 8번 교향곡부터입니다.
7번 교향곡 까지는 2관 편성 이였는데 8번부터는 3관으로 편성이 바뀐다는 것..
이것도 특이한 편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2악장의 스케르초의 시작되는데 배치만 보아도 브루크너가 베토벤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 입니다. 스케르초를 과감하게 2악장으로 배치한 이유는 7번의 성공으로
브루크너 자신이 작곡가로서 위치가 생겨서 베토벤을 모방했다는 비판에 브루크너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3악장을 8번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거대하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다지오임에 틀림없습니다.
하프의 로맨틱한 선율 속에서 천상의 세계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지휘자들 역시 3악장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4악장이 좋습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떠나 마지막 피날레의 금관의
최강주를 듣고 나면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의 대표주자는 바로 베토벤 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향곡 8번의 모델은 베토벤 9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1악장의 어둠 2악장의 투쟁적인 스케르초, 3악장의 숭고한 아다지오, 4악장의 환희에 찬
피날레 역시 평생을 베토벤을 이상으로 삼았던 브루크너 입니다.


개인적으로 수없이 많은 연주자의 손길을 통해 음악을 들어왔지만 그 중에 한 명의
연주자를 뽑으라 하면 저는 주저 없이 첼리비다케를 뽑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를 무시 할 수는 없겠지만..브루크네리안을
자처하는 지휘자를 뽑으라면 바로 첼리비다케이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음표 하나에 내포된 고저의 굴절을 다스리는 연주자라고나 할까?
턱없이 긴 호흡, 지속음까지 안배하는 각 악기의 울림. 시시각각 변천하는 각 악기의
섹션간 밸런스. 덕분에 다른 연주자에게서 중첩되지 않는 성부들이 제 모습을 찾는다 고나 할까?


갑자기 내지르는 캬라안이나 인발 같은 연주자 보다는 음의 덩어리를 다잡아 유유히
몰고 가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처음 들으면 바로 매력을 느끼는 연주는 아니지만
들을수록 빠져드는 연주임에 분명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브루크너의 모습이지요,.


연휴의 두째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단 5분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이지만 또 다시 만날 해후를
생각한다면 가을의 한 가운데 서있어도 맥박뛰는 설레임으로 기대 넘치는 삶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Anton Bruckner - Symphony Number 8 in C minor
Version 1890 - Edition: Leopold Nowak
Münchner Philharmoniker conducted by Sergiu Celibidache
Live Suntory Hall Tokyo, 20 October 1990
1. Allegro moderato
2. Scherzo. Allegro moderato - Trio, langsam
3. Adagio. Feierlich langsam, doch nicht schleppend
4. Finale. Fierlich, nicht schnell

 

 

 


 

 

 

끝없이 흐려진 잿빛 속 하늘은 맞물려 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는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내리고 어둠이 둔중한
종소리처럼 잠겨들기 시작합니다.


밖의 바람결은  약해졌는데 내안의 바람은 더욱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내 머리칼을 쥐어 뜯고 싶을만큼 아주 고약한 일 하나가 풀리지 않고 나를 채찍질 합니다.


다음주 수요일 10여개 업체의 경쟁 입찰을 앞두고 기획서 하나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워낙 짧은 5분안에 프리젠테이션을 마쳐야 하다보니 무얼 얘기해 설득 할 수 있을까

이런일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참 힘이 드네요.


늘 장황하게 설명하고, 논리적인 전략바탕의 기획서만 쓰다보니
어찌해도 5분이 넘어가는 브리핑 자료가 만들어 지는데 후련한 느낌이 하나도 안드는군요.
이러다보니 바깥날씨와 나의 울적한 마음이 음침한 흔들림으로 바뀌게 되네요.


어둠과 빛이 분화되는 표정없는 얼굴이 되어 적막함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 같은날은 아무것도 가로막히지않는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찾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우선인데 그와 반대로 성격탓인가 봅니다..

자꾸 잿빛 분화속에 나를 자꾸 밀어넣게 되는군요.


걸음을 멈추고 앉을 곳을 찾았으나 끈끈하고 습기찬 회색의 망상이 복잡하게
인도를 합니다. 고독스러움과 쓸쓸함.. 오뇌와 비탄의 끔찍한 중량을 몸에 담고
한참을 마음의 문에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나의 감정 처소에 두려움없이 심성의 자제를 조금씩 배워갈 수 있다면
오늘의 이 뜨거움 고독과 빼앗지 못 할 진실의 외로움을 치유받을 수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우매하거나 몰염치 하지않으면 아프고 감당하지 못할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갑자기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 작곡가의 인생도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차이코프스키 인생은 바람에 섞여 연기처럼 어둠이 서려진 지친 삶이 아니였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자살일까 ?
콜라라에 의한 죽음일까 ?
현재 결론이 안난 문제이긴 하지만
자살설이 대두되는 이유는 그의 동성애 기질이 공개될까봐서일까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의  백조의 노래

(7번 교향곡은  미완성 초고를 토대로  후세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상태) 에

남자 백조를 출연시킨 유명한 메튜본의 발레 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의한 자살을 했을거라는 것을 염두하고 연출한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차이코프스키가 두려워해 자살을 택했다는 것과  비창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될 것이라고
그가 말한것을 염두한 설이 설득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그의 죽음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그에게있어 인생은
꺼져버린 갈망과 비탄의 연속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여러가지 삶의 비화나 뒷이야기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너무도 상세히 나와있어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같이 공유할 비창은 말러의 영향을 받아 쓴 곡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음하는 서두와 애절한 비창의 주제,
이어지는 절망적인 투쟁으로 치닫는 제1악장,
러시아 민요조의 소박한 제2악장,
반항적인 투쟁이 전개되는 제3악장,
비통한 탄식과 절망이 도도히 흐르는 아다지오 라멘토소의 제4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먼저 아다지오의 무겁고 불길한 서주가 바순과 저현으로 꿈틀거리며 머리를 쳐듭니다.
고뇌를 강조하는 압도적인 제 1주제, 2주제는 장조지만 지극히 슬프고 나약한 환상이
가득한 악장으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스머프의 만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 멜로디를 기억하실 수 있을겁니다.
스머프는 제가 딱따구리와 함께 가장 즐겨 본 만화로 전 아지라엘을  너무 좋아했고
가가멜이 꼭 스머프를 잡아먹는 것이 성공하기를 무척 빌며 만화를 시청했답니다.


그때마다 꼭 제  기대는 무너졌지만. 하여간 제  어린 시절에는  만화의 권선징악적인
주제에 반감을 가져  악이 가끔 승리하기를 바라고는 했답니다.
사실 현실에서는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잘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전 이 제 2주제를 지금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 선율에 도취되어 결코 눈을 뜨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기분은 그러나 이 교향곡을 듣다 보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선율이 취해버린 사람에게는 전개부의 최강주가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할것이기 때문이랍니다.
투쟁적인 전개부가 끝나면 다시 2주제가 나타나고 곡은 조용히 어둠속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답니다.


첼로의 우아한 선율이 돋보이는 악장으로 가분수 박자의 영향인지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2악장입니다.  우아함과 달콤한 슬픔이 닫혀진 마음의 방파제를
조금씩 녹이는 악장인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적인 질주의 악장으로
눈부신 박력이 넘치는 행진곡으로 느린 4악장의 절망에 대한 일종의 반항처럼 들리는 3악장


탄식과 인생의 절망에 대한 슬픈 관조로 중간부분의 백조의 마지막 노래처럼
슬픔의 폭발 후 곡은  서서히 죽음의 강 저편으로 저무는 석양처럼 사라져 버리고
이 곡은 드디어 막을 내린답니다.


워낙 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했습니다.
누구의 것으로 들으면 가장 완벽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마에스트로 첼리비다케가 이렇게 말했다죠?
오케스트라는 신비고 하나의 악기라고 누가 지휘봉을 잡는가에 따라 사운드가
천차만별 달라질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말이 정답인듯 합니다.


자신의 몸을 통해 아니 마음을통해 음악이 가지는 그 작곡자가가지는 의미를
형상화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휘자의 역활이야 말로  오케스트라의 전부가  아닐수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푸르트뱅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정평이 나있지만 오늘은 카라얀과 비엔나 필 하모닉 연주 음반으로 권하고 싶네요


카라얀은 후기낭만주의 음악에 장기를 가진 지휘자답게 음악적 완성도가
대단히 높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서구적인 어법으로 기량이 탄탄한 사운드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녹음을 남기고 있으나 해석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다 들어보질 못해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 곡은 우울증의 치료에 좋다는 곡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슬픈 곡을 먼저 들려주고 서서히 상태가 호전되면
점차 밝은 곡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너무 밝은 곡을 처음에 접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답니다.
음악을 사람의 마음과 맞추는 동질의 원리가 적용되는게 아닌가 싶네요.


오늘같이 비가오는 밤..
제가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한곡의 뮤직에세이로 상심의 모두를
날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올려봅니다.

 

 

SYMPHONY NO.6 in B minor, op. 74 PATHETIQUE
연주
WIENER PHILHARMONIKER
지휘
HERBERT VON KARA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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