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연한 햇살이 기름처럼 내리는 가을..
친구 어머님의 소천을 바라보는 나는 가슴 한켠 묵직함을 느낀다.

내 어머님과 비슷한 연배이시기에 더욱 더 마음이 애닮다고나 할까?
늘 마음 추운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식들을 영혼의 어부로 키우기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던 친구 어머님..

 

자식들을 훌륭히 성장시켜 목사님으로 충현교회 장로님으로
믿음의 나라를 확장시킨 숨은 공로자이신 사랑의 어머님.
하늘나라에 든든한 집을 짓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소명을 다하셨으니

기쁜 마음으로 천국 입성을 축하드리고 싶다.

 

그래서 친구에게 위로하기 보다는 어머님의 기도하고 간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본향을 향해갈때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안식의 커다란

문이 열릴수 있도록 궁극의 것들을 행하여 삶의 몇갑절 더하는 영원한 안식을

찾아주는 진정한 어부가 되어주길 바라고 싶다.

 

친구야..

측량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있겠지만 어머님의 소천은 믿는자들의

영의 세계를 넓혀주신 축원과 사랑의 꽃밭을 이루게 한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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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기업이 환경 친화적 제품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짧은 행복의 눈가리개 뒤에 엄청난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선진국에서 지속 불가능한 개발을 중지하고 모든 것을 환경 친화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라타크에서는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1970~80년대 관광객들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고, 무분별한 서구식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겪었던 개발의 부작용들이 라다크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동체가 분열되고, 화폐의 가치가 점점 커져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주택문제, 빈곤문제, 환경오염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숱하게 배웠던 개발의 폐해들이 라다크에서도 그대로 되풀이 되고 있었다.

라다크인들이 보기에 서구의 생활방식은 편안하고 안락해 보인다. 내부의 문제를 그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 환경오염으로 생긴 각종 질병들, 공동체적 유대관계가 깨진

사회생활, 가족 간의 불화 등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정보를 충분히 접했었다면,

그들은 그처럼 맹목적으로 서구식 개발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개발진보라는 이름과 같이 쓰이고 있다. 나 역시 그 둘이 상당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발을 하는 것이 곧 진보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개발 과정에 생긴 부작용들은

더 발전하기 위해 치러야할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개발과정에서 생긴 부작용들은

발전된 과학기술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처럼 나는 라다크로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그것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서구문화만이 정상적이고 유일한 문화가 아니다. 서구문화는 이제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라다크의 옛 전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각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라다크의 삶은 오랜 시간동안 그들이 환경에 맞추어 이뤄낸 결과물이다.

그것을 똑같이 서양의 잣대로 재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라다크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저자가 행하고 있는 라다크 프로젝트가 그 좋은 예이다.

이미 우리는 무조건적인 개발이 주는 부작용을 충분히 몸소 깨달았다.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라다크의 생활방식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이제 우리는 획일화된 것을 강요하지 않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개발,

그리고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의 정의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라는 뜻일 수 있고,

두 번째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미래가 바로 이 라다크의 오래된

전통 속에 숨어있음을 뜻할 수도 있다.

 

그들은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었고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안정되었으며 평화로웠다.

모든 삶은 가정이 중심이었기에 가정이 중요시 되었고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없이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았다. 나 또한 라다크와 같은 평화로운 삶을 꿈꾸게 되고 그곳에 가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미 세계는 그들이 부정하건 하지 않건 세계화의 물결위에 있고

세계화를 거부 할 때에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소외당하게 되어 결국은 세계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이미 문명이 너무나도 발달했기에 세계 어디에서라도 다른 나라 이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으며 세계는 더 이상 자신들과 남을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즉 다시 말해 이미 세계는 마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절대 불변의 법칙처럼 세계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표출하는 것이다. 세계화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이라 할지라도

많은 병폐를 안고 있다.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지식, 돈 등과 같은 물질적,

정신적 공유를 뜻하게 되고 이는 결국 세계 문화의 단일화를 야기하게 된다.

 

라다크의 반 개발 프로젝트는 그런 면에서 생각해볼만한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는 반 개발할 수도 우리의 것만을 지켜갈 수도 없는 상황에 들어왔다고

할지라도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친환경적이고 우리의 전통적인 것을 잃지 않는 새로운 개발이

필요하다. 세계 속에서 세계와 어울리면서도 우리를 잃지 않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미래 우리는

우리와 과거를 잊어버린 채 방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공사현장을 둘러본 주변 환경..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처음 부터 극적일 수는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것들이 미리 약속되지 않은 일들을 성사시키는 것이라
조금은 황망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도 합당한 대답을 얻기 까지의
비지니스는 그저 열심히 클라이언트를 찾는 일이 아닌가싶다.


나를 바라보는 명징한 의식을 마비시키는 것,
그것은 경직된 사고와 기회주의적 사교술이 아닌가 싶다.
외롭다 외롭다 중얼거리면서도 정답이 없다는 이유로 찾지않고 있다가
비지니스적 이익때문에 고루하고 노회한 늙은 행위를 보인 내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십여년동안 친구가 운영하는 펜션 건설 일에대한 언급을 하지않고 있다가
뒤늦게 자그마한 일이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접선하듯 주일 예배를 마치고
평창에를 내려갔다. 친구가 평소에 자기가 운영하는 펜션에 놀러오라고
그리 신신당부를 했건만 들은 척도 안하고 있다가 일때문에 내려간 내가

미울수도 있었겠다 싶다.


늘 반성하는 것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서로의 소통이 있는것과

없는 것과의 차이는 우정이나 애정이라는는 항해에 있어 암초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죄악은 아니지만 괜히 죄인보다 더 큰 마음의 고통이 있는 것 같다.


어쨋거나 찾아준 친구가 반가워서 일 수도 있고 일에대한 믿음도 함께 가지고 있어
그런지몰라도 큰 무리없이 미리 약속된 게임처럼 출발 선상에 삐걱거림없이
좋은 감정으로 스타트를 할 수 있게되어 친구와 같이 이번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계신
또 한분의 사장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횡계 IC에서 바라보면 마주보이는 곳에 펜션 리조트가 들어선다.
이번 프로젝트는 워낙 규모가 작은 것이지만 근접한 곳에 용평리조트와
35만평의 켄터키 목장등.. 지역적 위치가 좋아 분양은 쉽게 될 것 같아 보인다.


일의 시작은 우여곡적을 겪었지만 셈을 위한 계산이 아닌 진심으로 친구의 사업을 위해
고민하고 좀 더 소비자에 다가갈 수 있는 빠른 시간내에 분양을 마칠 수 있는
좋은 제작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조금은 미안감을 덜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갑자기 마음이 바뻐지기 시작한다.

잘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푸르는 산등성이에 성공의 깃발을 흔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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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야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처럼 시끌벅적하다.

전 부쳐지는 소리, 고깃국 끓는 냄새, 조용했던 집안에 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난간 집안은 적막하다.

 

그 쓸쓸함이 외로움으로 다가오고 한 곁의 텔레비젼의 소리는

무서우리 만큼 나를 괴롭히며 괴물처럼 따라 붙는다.

무료함과 나른함이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언젠가 동갑친구들과 여행을 했던 자그마한 섬..

국화도.. 그곳의 추억은 참으로 정겹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작은 섬이라 잠깐이면 동네 한바퀴 돌 듯 끝나는 여행지지만

지친 이들의 마음 휴양은 그곳만큼 위안을 주는 곳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이지만 홀로의 여행은

늘 나를 두렵고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떠난다는 것 만으로 나는 흥분을 감 출수 없다.


무엇인가를 찾아서 떠난 것은 아니다.  
떠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라는 사실이다.
바람이 살갑게 불어도.. 뜨거운 햇살이 나를 익게 만들어도
삶의 기억들이 소리 내어 울어볼 수 있도록
어둠이 까맣게 칠해진 그 길을 떠날 수 있음에 행복하다.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탄력.
융합과 분해를 거듭하는 나의 자그마한 생각들..
내 몸 안에 수분은 자꾸 말라가고,
무성한 잡념들은 아픈 상처를 생선 비늘
털어내 듯 털어내고 있었다. 
 
차가 움직이는 창밖 풍경은 농익은 여인의
자태처럼 나를 향해오는데  창이 흔들리듯 내가 흔들린다.  
고독을 바라보는 그림자 찾기 방황은 열기의
아쉬움을 남기고 가을 풍경 속으로 빠져 버린다. 
 
추석 명절의 연휴를 보내면서 고달프고
허전한 절후를 거역할 수 없는 허탈로
무기력하게 겪었 냈지만 그래도 홀 로이 떠난
작은길에 내 감정의 송구스런 호의
그리고 따뜻함을 알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누구도 빼앗지 못할 진실의,
누구에게도 손실을 끼치지 않을 연약하나 서두르지 않을

따뜻한 마음을 허락한 신의 안배에 감사를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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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각자의 테마 뮤직으로 자신과 인간의 한스러움을 훑어내고, 씻어내고 또 위로한다.
가을은 때에따라 제 멋에 제 기분, 제 신명을 끌어내는 매미소리로. 귀뚜라미 소리로.
가슴을 씻어내고 삭이고 말리고 또 잠재운다.


물을 뿌리듯 싱그러운 바람은 불어오는데..
격렬하고 산란한 마음이 비수로 찌르는 것처럼 다가온다.
작년도 그랬고 올해도 추석 명절은 어김없이 엷은 유리에 한 겹 입힌 사진틀처럼 격리된 느낌이다.

 

의사의 집도를 기다리며 수술대위에 뉘어져 있는 병든 환자처럼...
몇 칠간 세상과 단절된 나 혼자만의 시간을 어찌 지낼까 생각해본다.
신경을 죽이는  마취의 방법만이 가장 좋은 구원이라  생각되어지지만...
막연하게 감상에 휘말리기에는 내 맘이 강팍스럽다.

 

그래..
이번 추석 연휴에는 내 생활 안의 것들을 정리해보자.
생활 그 안에 으뜸으로 귀한 것은 아무래도 사람이다.
사람으로 인해 괴롭고, 기쁘고 사람때문에  내 미혹의 끝은 헤아릴 수 없다.
내 생활 안의 사람들을 조심스럽지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내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중요했고,  사람이 주는 상처와 그 달가운 허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내가 사랑하고 관심을 쏟았던 사람들,
실로 거대하여 다른 여러 가지들 까지도  가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삶의 진지성 때문인지 유머 스럽거나 위트하지는 못하지만 
술수나 잔재주를 부릴 정도의 사람이 못되기에
나는 사람을 사귐에 있어 나의 순수성을 그대로 드러내어 사귐을 가진다.

 

그러다 보니 너무 솔직해 오해와 편견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전혀 내가 생각지 못하는 다름 사람으로 평가받고
나 스스로 황당해 하거나 지쳐 할 때도 있다. 이것이 내가 갖는 한계일지 모른다.

 

다소 즉흥적이라 어떤 때는 너무도 쿨 해서 문제일때가 많다.
그래서 말없이 고개 틀고 앉아, 한 숨쉬면서 속 끓여 고민할 줄 모르는 듯 하여 겉보기에 낙천적이다
아니 낙천적 인상이 강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여리고 여린 마음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갈등하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갈등으로 인해 그만 끝내야 할 사람들과 단절을 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면
벌거벗은 내 거울 앞에 용서가 될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번 추석 명절은 내게 있어서 그런 사람 들과의 단절을 결심하고 잊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데 좋은 기회가 되는 연휴라면 쓸쓸하고 외로움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해도
좋은 결과의 시간이 아닐까 위로해본다.

 

내가 잘못 판단을 했든..
아주 시원스레 잘 된 판단이든 구속을 벗어나 내 기억속에 잊어야 할 몇몇의 사람들.
적셔도 적셔도 목이타는 갈증으로 또 다시 호명되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별은 종말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는 이별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몇 걸음 앞에 놓인 차후의 감정적 곡선은 매일 내게 새로운 과제로 남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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